이 집, 핑거푸드 참 잘하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by 전하민

작년 초에 야마구치 슈의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인상 깊게 읽고 그의 다른 책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별생각 없이 사두었다가 이제 읽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매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두 책 모두 술술 읽히면서도 뭔가 똑똑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읽고 난 후 행동의 변화도 있었다. 철학과를 졸업하고 유명한 광고 회사를 거쳐 컨설팅 회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는 확실히 요새 잘 팔리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다.





흔히들 철학을 배울 때는 일종의 계보를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부터 데카르트와 칸트,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을 착실히 밟아나가기란 쉽지 않다. 또 오랜 시간을 들여 수많은 개념과 철학자들의 갑론을박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게 바로 현실의 쓰임과 연결이 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런 고민을 거꾸로 뒤집었다. 현실의 쓰임을 기준으로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 개념 중 50개를 선정해 핵심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다. 결과 (아웃풋)가 좋거나, 사고 과정(프로세스)이 좋거나. 마치 핑거푸드처럼 한 입씩만 먹을 수 있는 개념들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는다. 핑거푸드의 비유에 맞춘 다소 유치한 소제목과 함께.



내 입맛에 딱 맞았던 음식



미하이 칙센트미하트, 몰입



미국 심리학자인 그는 성공한 CEO, 운동선수 등을 인터뷰해서 그들 사이에 '몰입'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몰입은 능력과 과제의 수준이 둘 다 높을 때에 가능하며, 몰입을 통해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능력이 낮고 과제가 쉬운 상태에서 단숨에 몰입 상태를 경험할 수는 없다. 우선 과제 수준을 높이고 일에 몰두함으로써 능력을 올려나가야 하는데, 이 개념은 즐겁게 일하면서 성과를 내고 싶은 요새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 같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반취약성



나심 탈레브가 말하는 반취약성이란 외부의 혼란이나 압력에 오히려 성과가 상승하는 성질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나 세균에 대한 내성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시스템에 해를 끼치는 현상의 발생을 예측하기보다 시스템이 취약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취약성은 측정할 수 있지만 리스크는 측정할 수 없다. (중략) 변동성으로 인해 얼마나 피해를 입기 쉬운지는 측정할 수 있으며, 이는 피해를 일으키는 사건을 예측하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저자는 이 개념의 현실 적용 방법으로 '회사에 충성하지 마라'는 주장을 펼치며, 그보다 여러 회사에 근무하며 다양한 업계와 사람들을 만나라고 조언했다.




이런 맛도 있었어?


라인 페스팅어, 인지 부조화


6.25 전쟁 당시 중국의 포로가 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공산주의에 세뇌당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라인 페스팅어의 인지 부조화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중국이 사용했던 방식은 교육이나 고문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공산주의의 장점을 메모로 적는 병사들에게 담배와 과자를 주었다. 뇌물이 호화스러웠다면 병사들은 포상을 얻기 위해 한 것이라 여기고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뇌물은 너무나 사소했고, 그래서는 '공산주의는 나쁘다.'와 '나는 공산주의를 칭찬하는 메모를 적었다.' 사이의 인지 부조화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바꾸어야 했다. 병사들은 자신이 메모를 적은 것은 사실이므로, '공산주의는 나쁘다.' 쪽을 수정했다. 물론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이데올로기 전향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꺼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이론은 신선했고, 현실의 크고 작은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추천 맛집


이 책에 소개된 개념은 수많은 명저를 참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여기에 소개된 개념을 좋다 나쁘다 말하는 건, 홍어회를 먹고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고 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침 최근에 에히리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었고, 핵심적인 내용 (과도한 자유는 사람을 오히려 불안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나치가 평범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실려 있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에히리 프롬의 책에는 이 말고도 생각할만할 구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스스럼없이 추천할 것이다. 이 책은 꽤 맛있는 핑거푸드고, 한 번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몰랐거나 관심이 없던 음식을 즐기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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