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 버전의 미래를 맞이하다
조만간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가상의 이야기
우리는 넷플릭스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만날 수 있다. 평론가가 극찬한 고전 영화부터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까지, 주제와 배경이 천차만별이다. 그중에 SF를 빼면 섭섭하다. 기상천외한 세계관, 새로운 형식으로 무장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깊은 재미와 감동을 준다. 이중 몇몇은 우리가 죽기 전 맞이할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SF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신과 함께'와 다르다. 막연히 상상하는 재미를 넘어,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넷플릭스에서 SF를 살짝 맛보고 싶다면 <러브, 데스 + 로봇>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5~20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구성된 18개의 알짜배기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을 받는 작품이고, 영화 <세븐>, <소셜 네트워크>의 감독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을 맡았다. 제목을 직역하면 '사랑, 죽음 + 로봇'. 자극적인 단어들의 조합이다. 제목을 따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상도 있다. 그중 인상 깊었던 세 작품을 소개한다.
(폭력묘사 있음, 성적 묘사 있음)
한 여성이 우연히 건너편 빌딩에서 벌어진 살해 현장을 목격한다. 창문 너머로 살인자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지만, 남자는 다급한 표정으로 집요하게 쫒아온다. 그녀는 가장 익숙한 공간인 일터로 향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직장이자, 성적인 흥분을 사고파는 그 장소에서 기묘한 추격전을 벌인다. 긴박한 상황 끝에 둘은 서로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결말을 맞이한다.
만화와 3D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독특한 연출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면,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시각효과 자문 역할을 했던 알베르토 미엘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효과음이 마치 만화처럼 표현되며 2D와 3D를 넘나 든다. 홍콩에서나 볼 법한 오피스텔 정글에서 펼쳐지는 긴박한 스토리는 과정만으로도 훌륭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12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충격을 선사한다.
(폭력묘사 없음, 성적 묘사 없음)
행성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로봇과 인간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먼 미래에 '지마'라는 이름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그는 캔버스의 크기를 끝없이 확장한다. 장엄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그의 작품은 우주를 올려다보아야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외부와 소통을 단절한 채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던 그가 어느 날 인터뷰에 응한다. 그리고 펼쳐진 쇼에서 그의 정체가 비로소 밝혀진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모든 게 변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유효한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깊고 오래되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운다. 그런 점에서 <지마 블루>는 가장 간결하면서도 그럴듯한 답을 내놓았다. 영상 속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지마 블루'가 표현되는 방식은 마치 현대미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상적이고 동시에 친숙하다. 그리고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은 다독특하다. 다른 반전과 달리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위해 눈을 감게 되기 때문이다.
(폭력묘사 없음, 성적 묘사 없음)
젊은 커플이 벽지가 누렇게 뜬 오래된 주택에 이삿짐을 풀고 있다. 남자는 주인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냉장고를 발견한다. 열어보니 그 안은 오래된 물건과 성에로 가득하다. 일부를 떼어 와인을 차게 해서 마시려는 찰나, 그들은 얼음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건 손톱보다도 작은 매머드였다.
냉장고의 성에를 전부 제거하고 나니, 그 안에는 인류의 초기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세 초 유럽과 같은 양식의 건물에서 아주 작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냉장고 안의 시간이 밖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는 것이다. 커플이 잠시 눈을 돌린 10분 사이, 냉장고 안 문명은 어느새 산업혁명을 지나고 있었다. 이들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냉장고 안에 문명이 존재한다는 상상. 이와 비슷한 걸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이스 에이지>는 그런 상상이 주는 즐거움을 현실로 구현했다. 18편의 영상 중 유일한 실사 작품이자, 시리즈의 제작자인 팀 밀러가 직접 감독한 이 영상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막연한 미래로 치부했던 것들이 점차 현실과 가까워진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언텍트가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자율주행, 드론 배달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다. 10여 년 전, 우리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사진 한 장을 보내기 위해 돈을 썼고, 음악을 듣기 위해 pc에서 파일을 다운로드한 후 그걸 핸드폰으로 옮겼다. 10년 후에는 무엇이 변할까? 아니, 무엇이 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