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가면서 느끼는 불안(1/3)

불안 1. 업계 1위 기업을 떠나다

by 전하민

어제는 송별회였다. 갑작스러운 이직을 축하해주는 자리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마침 1년 선배도 거의 동시에 회사를 떠나서, 겸사겸사 동년배들끼리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평일 오후 6시인데도 모두 퇴근에 성공해 회식장소에 도착했다. 그중에는 항상 같이 고생하던 파트 사람들도 있었고 입사 동기도 둘 있었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나는 11시에 서울역에서 KRX를 타야 했으므로, 2차 호프집에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밤에 출발하는 여행을 잡아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왁자지껄한 공간에 있기가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 같이 웃고 있었지만 그들은 남을 사람들이고 나는 떠날 사람이었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외롭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울고 싶어 졌다.


자정이 넘어서야 청주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사실은 모텔인 곳에 미리 방을 잡아둔 터였다. 체크인을 하면서 야간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직원들과 마주쳤다. 둘 다 피곤해 보였다. 한 직원이 내게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다. 생수를 한 병 달라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꺼내 주면서 바나나와 귤도 같이 건넸다. 예상하지 못 한 친절함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만 마음속 불안은 여전했다.


이 불안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잘못된 선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난 익숙하고 안정적인 회사를 내 발로 걷어차고 스타트업에 가기로 했다. 여유로운 평일 저녁은 당분간 누리지 못 할 것이다. 어쩌면 십수 년 동안 그럴 수도 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 아버지의 탄식이 나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이놈아... 아이고 이놈아..." 그건 지금껏 아버지에게 들은 목소리 중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였다. 차라리 화를 내셨다면 이 정도로 참담한 기분은 아니었을 텐데.


업계 1위의 기업에서 안정적이고 익숙한 직무를 내려놓고 소기업에 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고작 연봉 조금 올려주는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저녁이 있는 삶, 고용안정성, 대기업 공채라는 타이틀과 동료들과의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하나씩 해체해본다.




불안 1. 업계 1위 기업을 떠나다


지금 업계 1위의 기업이라고 해서 미래에도 업계 1위를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한샘은 대단한 기업이다. 1위라고 방심하지 않고 시장을 선도하며,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과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재무 구조 또한 튼튼해서, 부도가 나거나 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건 한샘이라는 회사지, 내가 아니다. 나는 한샘이 아니다. 한샘이 성장한다고 내가 성장한다고 볼 수 있을까? 10년 후 한샘의 매출이 2배가 되었을 때, 나의 연봉도 두 배가 될까? 게다가 지금 하는 일을 미루어보면, 나의 역량과 전문성이 회사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회사원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조직에서 한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자연히 숙련도가 올라간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처리하게 된다. 그러면 스스로 일의 완급조절이 가능하고,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니다. 사람은 고통 속에서 일만 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끙끙거리며 실수하는 직원보다는 느긋하지만 일처리가 확실한 직원이 낫다.


하지만 개인의 성장 관점에서 익숙함은 곧 독이다. 어려운 상황을 마주쳐야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 방안을 내놓을 수 있고,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그건 소중한 경험이 된다. 경험이 쌓이면 시야가 넓어진다. 그 시야를 가지고 이전에는 하지 못 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반대로 말하면 차곡차곡 쌓인 경험이 두려움을 없앤다.


어렸을 때 나는 사업가를 동경했다. 그들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찌든 표정으로 회사에 다니지 않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책에서 회사원을 원숭이에, 사업가를 늑대에 비유하는 구절을 읽고 그걸 일기장에 몇 번이고 옮겨 적었다. 물론 이제는 안다.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아침부터 설렐 수 있고, 누군가는 자기 일을 하면서도 죽지 못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까.




여기까지 적으니 불안이 조금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글쓰기는 예상보다 효과가 있었다. 마치 청주의 모텔방처럼, 이질적인 공간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설레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안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다. 나머지는 내일 해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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