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가면서 느끼는 불안(2/3)

불안 2. 새로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by 전하민

백수 2일 차

엊그제 회사를 그만두었다. 마감을 하느라 바쁜 팀원들을 뒤로하고 어색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짐도 많지 않았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pc를 반납하기 전에 인트라넷 조직도를 보며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골랐다. 모두 267명이었다. 그들에게 짤막한 퇴직인사를 보내고 나니 비로소 퇴사가 실감 났다.


퇴직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홈쇼핑부 전하민입니다. 금일부로 한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마땅하나, 이렇게 메일로 퇴직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입사 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재직기간 동안 물류, MD, 영업지원 등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였습니다. 목표와의 괴리에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일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더없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동안 지도와 가르침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짧은 인연에 아쉬움이 남지만, 언젠가 어디서든 다시 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샘과 여러분 모두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전하민 올림.

- 진부함을 피하기 어려운 퇴직인사




불안 2. 새로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이전 글에 이어 이직이 불안한 이유를 따져보았다. (이전 글 보러 가기)

내가 이직하게 된 포지션은 비즈니스 전략 매니저 (Biz Dev)이다. 멋진 단어의 조합이지만 실제로 어떤 일인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이걸 고른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에서는 직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 커머스 사업 KPI 설계 및 KPI 트래킹

Top Line KPI와 이에 영향을 주는 Lever KPI를 정의하고 관리

친절한 리포팅을 통해 커머스팀 구성원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고 업무를 한 방향으로 추진


2. 산업 동향 파악, 잠재 Key Account 발굴 등 시장환경 모니터링

대단히 빠르게 변하는 이커머스 산업의 As-Is 상황과 주요 이해관계자를 정확하게 진단


3. 다양한 부서의 참여가 필요한 신규 프로젝트 리딩

신규 프로젝트는 Go-To-Market Strategy, Internal Process Innovation 중심으로 진행



내가 과연 잘할 수 있는 일일까? KPI 트래킹과 시각화는 경험이 있지만 설계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특히 매출, 손익, 전환율 같은 단순한 지표가 아닌, 직무별 Level KPI를 설계하고 추적하는 건 커머스 사업과 조직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샘에서 자사몰 KPI를 담당하기는 했지만, 한샘 제품에 한정된 내부적인 지표만을 관리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관련 경험이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산업 동향 파악, 잠재 key account 발굴은 컨설팅 회사에서나 할 법한 일이다. 채용조건에도 컨설팅 펌 근무자를 우대한다고 적혀 있었다. 거긴 정말 좋은 대학교 출신만 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불안해졌다. 오늘의집이 내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불안해졌다. 왜냐하면 난 신입이 아니라 경력직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직은 결혼으로 따지면 사기 결혼에 해당할 수도 있다.


불안 잠재우기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두 처음이었다. 지금은 당당하게 경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 역시 처음에는 생소했다. 맨땅에 헤딩하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조금씩 업무를 이해했고, 나중에는 제법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샘 입사 후 나는 경제학과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물류원가팀에 배치되었다. 그 전까진 관련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물류에 대해선 무지했다. 당시 팀장님은 신입인 나를 곧바로 지방 물류센터로 보냈다. 1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경상남도 양산의 모텔에 거주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위 까대기라고 불리는 물류 현장일을 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물건들을 나르는 탓에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그건 소중한 경험이었다. 물류 전반의 흐름을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다음 가구 표준시공비 체계 구축이라는 까다로운 과제를 맡았을 때, 나는 부사수 자격으로 시공 현장을 따라다니게 해달라고 먼저 요청했다. 잘 모를 땐 직접 해보는 게 제일 이해가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홈쇼핑 MD로 직무 변경을 했을 때도, 그러다 영업지원팀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숨에 전문가 수준의 역량을 갖추기는 어렵더라도, 한 두 달 고생하면 대충 흉내는 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다시 맨땅에 헤딩하기

비즈니스 전략 매니저로 돌아가 보자. 이름도 생소한 이 직무를 위해서 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다행히 주변에 컨설팅 펌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 전략 업무를 하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그는 책을 몇 권 추천해주었다.


바바라 민토, <논리의 기술>
사이토 요시노리, <맥킨지식 전략 시나리오>
테루야 하나코, 오카다 케이코 공저, <로지컬 씽킹>


또 KPI 관련 내용을 찾아보던 중, 구글의 목표 관리와 인사제도에 대한 책도 한 권씩 구매했다.


존 도어, <OKR 전설적인 벤처투자자가 구글에 전해준 성공 방식>
라즐로 북,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위의 책 5권을 입사일까지 남은 며칠의 여유동안 독파할 계획이다. 벌써 절반 정도를 읽었다.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지만 체화해서 업무에 적용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책이 전하는 게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논리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설렘

첫 퇴사를 경험하며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요즘이다. 허무함, 두려움, 막연한 기대, 설렘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고 있다. 군대 전역을 며칠 앞두었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누구와 만나고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사실 지금도 비슷하다. 일생의 목표, 세월을 통해 반드시 증명하고 싶은 어떤 것, 그런 건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또 그래서 설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기업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가면서 느끼는 불안(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