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내 코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에 찬기가 가실 때쯤 내몸은 간질거리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어서.
가깝게는 동네 앞 카페부터 멀게는 버스를 타고 가는 곳 까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는 자기가 다녀온 곳들을 공유 (라 말하고 자랑이라 읽는다) 하고 나는 하나라도 놓칠까 스크랩을 해둔다. 내일 혹은 모레, 언젠간 갈지도 모르는 나의 여행을 위해
그런데 참 이상한게 여행을 가고싶은데, 가기 싫다. 나만 그런걸까?
나가서 바람도 쐬고 사진도 찍고 인스타에 업로드도 하고 새로운 기운을 받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싶은데 막상 나가려고 하니 내가 지금 있는 집에 너무 좋고 집에서 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면 되고 누워서 쉬면 되는데 이렇게 집이 편한데 밖은 너무 정신이 없어? 이런 생각이 들어 나가지 않은 적도 사실 많다.
집에만 있으면 분명 2~3시간 뒤엔 심심해서 티비나 유투브를 볼테고 그럼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했다며 이시간에 여행을 갔겠다' 후회할텐데 나는 그걸 잘 알면서도 왜 누워서 인스타와 내 앨범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한살한살 먹을 수록 쉽게 나가는 게 더이상 쉽지 않게 되고있는 것 같다. 막상 나가려고 하면 씻어야하고 화장도 해야하고 이것저것 가방도 챙겨야하고 차 예매 하고 지하철 타고 터미널까지 가서 여행하고 다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준비과정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 이다. 어릴 땐 작은 도시에 살았으니 씻고 옷 입고 터미널 까지 가는 과정이 그리 복잡하지 않았지만 서울에 사는 지금은 귀가 시간과 과정이 여행만큼이나 길고 피곤한건 사실이니까. 여행을 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지만 여행을 가는 그 과정이 스트레스라서 섣불리 가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동안 느꼈던 여행의 기쁨이 여행을 가는 길의 피곤함을 이길만큼 크지 않았다는 것에도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봄이 되어 내 마음에도 여행 바람이 불었다. 요즘 속초가 그렇게 가고싶어서 계획을 세웠는데 가지 못했다. 그건 다 내마음 속의 갈등 때문이었는데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가고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여행가고 싶어하는 집순이의 병이 생긴거지. 누군가들의 SNS에서 넓고 시원한 에메랄드빛 속초바다, 그 바다 옆에 있으며 카메라를 켜기만 해도 감성사진이 나올 것만 같은 카페, 요즘 내가 빠져있는 책방 등 나의 옆구리를 콕콕찌르는 사진들을 본 후로 내가 속초에 가야하는 이유를 꺼내고 꺼내서 그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내 결심을 비웃기라도 한듯 어느 주말은 비가왔고, 어느 주말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했고, 어느 주말은 친구가 놀러왔다. 그리고 버스티켓까지 예매하고 잠든 다음날은 평소엔 잘만 들리던 알람이 들리지 않아 늦잠을 자버렸다. 그리고 다시 예매 하려 고속버스 앱을 켜서 버스 리스트를 열었더니,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누르지도 못하는 회색 화면이 모든 버스가 매진 이라고 말해줬다. 세상에서 누르지도 못하는 회색이 제일 무섭다.
'이렇게 내 여행은 무산인건가. 아 진짜 뭐지, 왜 못가는거지?너무 가고 싶은데. 운전이라도 배워야 쉽게 갈 수 있나? 아니지 운전을 하면 차밀리는게 너무 무서워서 가지 못할테야..' 진짜 난 멍청이!
다시 누워서 동생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책을 읽고 (책은 시간이 나지만 내가 해야할 일들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합법적으로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되어 자주 읽기도 한다.) 저녁시간의 영화를 예매했다. 다행히 집앞에 극장이 있어 그날의 여행길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집에와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다음 여행계획을 세우는 나를 보면서 '그래 여행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지, 내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여행이 될 수 있어' 라는 바람직한 합리화를 하며 나의 귀찮음을 관대함으로 조금은 덮어두었다. 언제 다시 여행이란 게 무거운 귀찮음을 삐집고 고개를 들진 모르지만 그 땐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쿨하고 힙하게 한번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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