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ry Feb 23. 2023

어쩌다 모교앞

카페를 오픈하다.

한 번씩 카페 오시는 고객님들이 왜 이곳에 카페를 하게 되었냐고 묻는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제가 여기 초등학교를 나왔거든요!"


모두 다 토끼눈이 어서


"진짜요? 여 학교 나왔다고요?"

"사장님 울산사람이에요?"


그렇다. 카페 바로 맞은편에 나의 모교가 있다.


가게 자리를 일 년 정도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마땅 마음 가는 곳이 없었다.


뭐든 익숙한 게 좋은 나는 카페든 미용실이든 식당이든 주로 가던 곳을 간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였고 모교 앞이라 그랬는지 가게 자리가 왠지 편안게 느껴졌다.


요즘 입학식이나 졸업식 하는 나의 후배님들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한다.


'나도 저기를 걸어서 올라갔었는데..'

'저랬던 쪼꼬미가 언제 이만큼 커서 학교 앞에서 카페를 하고 있지? ' 하고 말이다.


막상 모교 앞에 가게를 얻고 보니 학교 앞이라 그런지 가게 바로 앞에 휀스가 쳐져 있었고


요즘 초등학교 앞 주정차가 힘들다 보니 잠시 차를 하고 테이크아웃 해가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무엇보다 계약하고 한 달 정도의 기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카페에서 불과 20m 떨어진 바로 옆 건물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온다는 것이 아닌가..(지금 매장은 꽤 오랜 기간 카페자리였고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오는 자리는 빈 상가였다.)


계약금을 포기하고 들어올까 말까를 몇 날며칠 고민하다가


나는 로스터리 카페이고 저긴 프랜차이즈 커피숍인데 몰라 일단 해보자!




내가 카페를 하는 동안 2개의 개인카페와 1개의 베이커리 상점이 문을 닫았고


3개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2개의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섰다.


카페들이 문을 닫을 때마다 덩달아 나까지 졌다. (동종업계의 동질감이라고 해두자..)


작년부터 생두, 우유, 설탕, 버터, 밀가루 등 카페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 가격이 올라 버렸다.


거기다 올해는 전기세, 물세까지..


나는 스페셜티 생두를 사용하고 있지만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는 바람에 TO-GO 커피를 천 원 할인해주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카페를 알리고 내 커피를 많은 사람들이 먹어 봤으면 해서 시작했던 일이 월말 정산을 할 때마다 맞나.. 하고 한숨이 나왔다.


1년 반 만에 가격을 올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물가가 너무 올라 안 올릴 수는 없다.(머리를 몇 번이나 쥐어뜯었다..)


사장님 이 가격에 이런 퀄리티 커피를 어떻게 마셔요? 오래오래 해주세요!!

모교 선생님이자 단골 고객님의 말씀이 계속 귓가 맴돌다.




주말 내내 고민하다가 드디어 가격인상 안내문구를 만들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가게에 안내문을 붙여놓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안내문을 읽고 또 읽고.. 고객님이 오시면 마치 석고대죄하듯이


"저희 따뜻한 음료 300원 올랐어요.. 대신 아이스 가격은 그대로예요.. 죄송해요.."


"요즘 물가가 다 올랐는데 올려야지.."


대부분의 고객님들은 쿨하게 이해해 주셨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사실 3,500원 아메리카노 228잔을 팔아야 월세를 낼 수 있다.


어쩔 때는 내가 월세 내려고 을 하는 건지 을 벌려고 일을 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커피 228잔 팔아야 낼 수 있는 월세 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건물주인은 가게 수리 해줘야 할 부분을 전혀 고쳐주고 있지 않다.(세입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건물주인은 건물주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


고쳐 달라고 연락해 봤자 묵묵부답이고 답답해서 내용증명도 보내봤지아오는 답은


"아가씨~내용 증명 보냈어요? 대단하네~법대로 세요~~~~~" 다.

(내가 마동석이었어도 저렇게 나왔을까 싶다..)


여자 혼자 매장을 이끌어 가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건물주인 사위는 나에게 사장님이라고 하지 않고 꼬박꼬박 아가씨 아가씨라고 한다.(아가씨가 이렇게 듣기 싫은 단어일 줄이야..)


나도 아저씨 아저씨 하고 싶지만 똑같이 무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꾹 참는다.


비록 20m 바로  건물에 프랜차이즈가 카페가 들어섰고 이 동네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8개나 있지만


그 속에서 오늘도 나는 존버.. 존버.. 존버..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참새방앗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