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온 Feb 14. 2021

[전시리뷰] 나만의 서점은 어떤 공간일까요?

K현대미술관, 전시 '라스트 북스토어'


책이 있던 공간에 대한 기억 



책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지금 그 시간과 공간을 되돌아보면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높지 않았던 책장들이 줄지어 서 있던 장면이 생각난다. 위로 올라가며 쌓이기보다는 바닥의 방향으로 꽂혀 있던 책들. 그중에서도 자주 찾던 소설 코너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창가 바로 아래의 책장을 왠지 좋아했었다. 그 책장 바로 옆, 책상에서 항상 책을 읽었었다. 


책이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책 자체만으로도 환기되는 감정과 생각들이 분명 있지만, 그 책을 접하고 읽었던 공간에 대한 기억도 대부분 함께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제주 한 달 살기를 할 때 열심히 동네의 독립서점들을 돌아다니며 구한 책들과 그 책을 추천받고 읽어보고 구매를 결정할 때까지의 소소한 과정들은 그 책을 펼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회상된다. 


다니던 중고등학교 근처에는 두세 개 정도의 서점들이 있었다. 학교 근처라서 문제집, 참고서를 사는 학생들이 주 소비층이었지만, 서점에 들를 때마다 사장님의 선택으로 골라졌을 소수의 책 혹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헌책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헌책들은 그 특유의 낡은 냄새를 가지고 있어서 헌책방의 공기와 분위기는 다른 서점과는 달랐다. 


이제 그 서점들은 대개 문을 닫았다. 지금 사는 곳에서 서점을 갈 수 있는 선택지는 대형 서점과 조금 멀리 떨어진 독립 서점 하나이다(그마저 있던 대형 중고서점은 최근에 문을 닫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창하지만 언제나 책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누가 종이책을 사고, 어디서 책을 읽을까. 가까운 미래에 책은 어디에 존재하고 독자들에게 다가올까.   



나만의 서점은 어떤 공간일까요? 



전시 <라스트 북스토어>라는 전시 명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이런 고민을 혼자서 종종 해보는 까닭이었을 것이다. 전시의 부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점”이다. 전시소개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전 세대가 물려준 다양한 지식과 지혜가 담긴 책과 그 책을 파는 서점이 점차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이다.


라스트(Last)의 사전적 의미로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1. 가장 최근의/지난 2. 마지막(남은). 


‘라스트 북스토어’라는 전시 명은 전시 소개를 읽어보면 ‘마지막 서점’을 의미하는 것에 가까운가 싶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섣불리 번역할 수는 없다. 전시 내용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계의 문인들부터 앞으로 종이책이 나아갈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며 책의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간다.   


현재는 향유하는 사람만이 찾는 종이책이 대부분의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에 문 앞에 놓인 신문, 부모님이 읽어주는 동화책 혹은 교육의 목적으로 사주던 전집, 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크게 적어두던 교과서와 연인에게 적기 위해 찾던 사랑시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책을 사고 보기 위해 돌아다녔던 헌책방 골목과 도서관 안의 수많은 책. 



흘러간 시간만큼 달라진 책이 가진 의미를 이 전시에서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돌아보도록 한다. 종이책의 쓰임을 확장하는 오브제들은 종이책의 의미를 넓혀주는 듯하다. 우리가 읽던 종이책들은 하나의 그림으로, 모빌로, 별을 그린 지도로, 보석으로, 사람으로 변신한다. 종이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다양한 오브제들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종이책들의 변신은 점차 종이책의 소비가 줄어들고, 종이책의 종말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대로 종이책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그렇게 종이책의 무궁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책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렵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 인상이 많은 사람을 책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할 것이다. 그런 접근성을 좁혀주기 위함일까, 전시 <라스트 북스토어>는 꽤 상세한 작품 설명을 작품마다 덧붙이고 있다. 


전시에서 길 잃은 미아가 된 기분을 느끼며 황망해하는 대신 책과 공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명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려 보거나, 그러면서 작품의 외연과 내재된 의미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작품설명이 상세한 점은 전시를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전시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렵게 느껴짐으로써 오히려 책과의 거리가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은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라스트 북스토어>는 책과 더불어 ‘전시’가 쉽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시이다. 



이 전시를 보는 일은 곧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점을 방문하는 일과 같다. 별이 된 문인들의 얼굴과 이름을 살펴보며 내가 만약 서점 주인이 되어 책을 고른다면 어떤 문인의 책을 들여놓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만약 나만의 서점을 한두 개의 단어로 설명한다면 어떤 키워드가 좋을지 고민해보게 된다. 그리고 서점에 책과 책장 말고도 어떤 물건들이 그 공간을 차지하게 될지 생각해보면서 하나의 상상 공간을 만들어보게 된다.   


전시의 부제대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서점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이 하나의 독자로서 책에 관한 생각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오가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지고 펼치고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종이책과 종이책이 있는 공간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더 다양한 전시 '라스트 북스토어'에 대한 리뷰글은 아트인사이트:)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 향유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