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온 Nov 04. 2020

[도서리뷰] 종이책을 수호하는 사람들에게

종이책이 사라진다고요?


어렸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미래에는 종이책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주었던 충격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있다. 한창 홀로 심각했던 그때는 도서관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이 책들이 전부 없어진다고?’ 생각하거나, 책장을 넘기는 순간에 ‘이렇게 종이를 넘기며 책을 읽지 않으면 무슨 기쁨으로 책을 읽지?’라며 근심에 차있고는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종이책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별로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지만, 내가 종이책을 사랑하는 이유를 잊지 않고 종이책의 매력을 주변에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의 프롤로그에서 던지는 질문, ‘우리는 왜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질문일 것이다. 나 또한 "왜 나는 종이책을 좋아할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고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내가 종이책을 사랑해온 순간을 돌아보는 일임과 동시에 세상의 많은 나를 포함한 예비 독자들이 '종이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적확한 문장으로 사유할 기회였다.    


이 책은 내가 책과 눈이 맞아서 읽고 말았던 행복감이 몸을 관통하면서 남긴 얼룩과 무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본 사유의 흔적이다. 
-10쪽


이 책의 부제는 ‘읽기의 길이가 사유의 길이다’이다. 저자 본인의 삶의 궤적을 채운 읽기의 기록, 즉 저자의 독서 기록이 모여서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여있다. 그만큼 저자만의 사유로 가득 차 있는 책이기에 누군가의 잘 정리된 독서기록장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책을 사랑하는 저자의 체험적 기록이기 때문에 소개된 책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책을 읽어왔을까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한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저자를 읽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 모든 저자는 당대의 사회 역사적 토대에 발 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를 읽어야 한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하는 까닭과 마찬가지다. 독서는 새로운 탄생이다. 독서는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이다. 
-62쪽


사람마다 자신의 독서법은 다를 테지만, 책 속에서 소개하는 독서법을 읽다보면 그동안 겉핥기식으로 책을 읽어왔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텍스트를 좇아가기도 급급한 책 읽기. 이것이 그동안 내가 대부분의 책을 읽는 방식이었다. 독자 나 자신을 읽는 행위는 부재했던 독서를 해왔던 것이다. 책에서는 독서 후 나의 사유를 통해 나만의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유하자면 독서를 통해 건축 자재들을 열심히 모아놓고, 정작 뼈대를 지어 집을 완성하지 못한 독서를 여태껏 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독서는 결국 내 관점과 생각이 남아야 하는 행위다. 저자의 사유를 향유하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나아가 나의 사유가 확장되고 깊어지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저자의 사유가 담긴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누군가의 체험적 사유를 나의 사유로 체득하고픈 욕구가 생긴다. 


그동안은 책을 읽으면서 인덱스를 붙이거나 밑줄을 그어놓은 후, 독서 노트에 그 문장들을 옮겨 적었다. 그 후에 남긴 몇 줄의 감상을 남기는 정도가 내 독서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 속 독서법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스스로 독서법을 되돌아보았다. 이 책은 그렇게 나의 성찰을 돕고, 그 이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도록 옆에서 기꺼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나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떠나는 실천적 여정  


“세상을 파악하는 방법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머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손이다. 손은 마음의 칼이다. 그것이 세상을 바꾼다.”
-야콥 브로노프스키(영국의 수학자이자 생물학자)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는 점 중 하나는 바로 ‘실천’이다. 소개되는 책들이 좋은 책인 이유는 그저 관념적으로 쓰여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책이 아니라, 저자들의 체험적 진실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저자의 글에 이입하여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자와 책이 서로 눈이 맞아버리도록 만드는 글의 힘을 가진 책들이다.


이 책 또한 저자가 자신이 읽은 책들을 통해 느낀 사유를 독자의 시선으로 또 다른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상대방을 나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독특한 콘셉트가 필요하다.
-190쪽


저자 유영만은 자신을 스스로 ‘지식생태학자’라고 명명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식생태학자라는 단어가 주는 생소함에 절로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책을 접하며 저자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위에서 인용한 문구 그대로 저자만의 독특한 콘셉트가 독자들이 저자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한다. 


콜링, 브랜딩, 콘셉트라는 단어들을 내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네이밍하는 일이 곧 나의 정체성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나의 세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종이책 수호자’ 


아직은 감히 자신에게 붙일 수 없는 이름이지만, 훗날 이렇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왜 종이책을 읽어야 할까? 라는 질문에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말들은 분명 있다. 종이책이 가진 고유의 냄새와 질감은 다른 전자책과 영상 콘텐츠에서는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특징이다. 또 저자의 말대로 종이책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 그 처음과 끝을 독자 스스로 종이를 넘기면서 정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 종이책이 매력적인 이유일 것이다.  


수많은 책, 그중에서도 종이책을 만나는 일은 분명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어떠한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책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를 읽으며 타인의 읽기와 사유를 깊이 읽고 그것을 다시 나의 읽기와 사유로 가져오는 일을 통해 내가 종이책을 가까이하고, 기꺼이 수호하겠다고 다짐한 이유를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 책은 그렇게 다가갈 것이다.



책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에 대한 더 많은 리뷰글은,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59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