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책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출판학과’는 왜 없을까? 라고 출판학의 부재에 의문을 가지는, 출판저널 519호의 처음을 여는 질문은 묵직하다.
대학에서 점점 각종 콘텐츠 학과가 신설되는 가운데 출판 콘텐츠를 기획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학과는 여전히 부재한다. 책문화생태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글을 포함해 출판저널 519호에 실린 글들은 ‘출판학’의 필요를 외치고 책과 독자를 위해 출판 세계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찾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책을 향유하기 위한 공간에 대한 탐색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책 자체를 좋아하지만, 정작 책이 있는 공간에 대해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출판저널 519호에서는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독서당’이라는 공간과 오스카 니마이어의 도서관을 소개하고 있다. 독서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던 ‘독서당’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독서당은 중요한 책들이 모이는 도서관의 역할을 했으며, 좋은 책을 읽는 독서공간이었으며, 시를 짓고 낭송하며 자연을 즐기는 풍류의 공간이었으며, 좋은 책을 쓰는 창작의 공간이었다. -11쪽
오늘날의 도서관과 서점이 더는 책을 ‘보관’하고 ‘판매’하는 단일한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서당의 정신은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오스카 니마이어의 도서관은 모든 연령층이 도서관에 쉽게 발 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한다.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을 보면 책을 매개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독립서점을 보아도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들여놓으면서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책의 세계를 체험하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을 꾸준하게 열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책 사는 공간이었던 서점은 현재에 이르러 책을 사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과의 만남의 공간, 책에 대한 인식의 경계를 확장하도록 돕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의 디자인이 기본적으로 곡선의 디자인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여전히 도서관의 이미지는 딱딱하다. 지금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들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반대로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은 사진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로 보았을 때 그동안 도서관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자유롭고 탐구 정신이 샘솟고 부드러운 공간, 그래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의 이미지이다.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을 소개하는 꼭지를 읽으면서 책이 있는 공간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독자를 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음을 느꼈다.
책이 있는 공간 중에서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는지, 나만의 책 읽기 좋은 공간이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는 일이 앞으로 필요할 것이다. 책과 거리를 점점 벌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다시금 집어 들도록 끌어당기는 힘은 책이 놓인 있는 공간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의 공간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꼭지는 도서정가제 시행의 배경부터 앞으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쟁이 나아갈 방향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부끄럽게도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막연히 제값 내고 책을 사고 읽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책 자체를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정가로 산다는 것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에 그동안 이 제도에 무관심했었다. 다행히도 이 꼭지를 읽으며 도서정가제를 두고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도서를 사는 소비자들의 다양성을 미처 분석하지 못했다는 말에 깊이 공감되었다.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것과 그 책을 정당한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 일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책을 사는 주체인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는 것은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끊이지 않았던 지지부진한 논란이 계속 이어지는 것뿐이다.
올해 11월 도서정가제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태껏 잘 몰랐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유심히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이슈를 지켜볼 것이다. 독자들과 출판업계, 책과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앞으로 책문화생태계를 더욱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합의가 이끌어지기를 바란다.
‘책따(책 읽으면 왕따)’라는 신조어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의 충격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MZ세대에서 알파 세대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 책이 제일 젊은 세대에게 주는 이미지는 한층 더 부정적으로 된 듯하다. 앞으로 책을 옆에 끼고 살고 싶고, 죽을 때까지 향유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해서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 실마리로 출판저널을 읽어나가는 일은 의미가 깊다.
특정 층의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문화가 아닌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책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항상 ‘독자’의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책 말고도 즐길 거리가 너무나도 많은 요즘, 독자가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연구하는 것과 독자가 거리낌 없이 책을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도록 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책을 쓰고 만들어내는 일도 분명 중요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책 읽는 사람’으로 스스로 명명하도록 돕는 일도 중요도를 따질 것 없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출판저널에서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는 신간도서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 많은 책들이 보다 더 많은 독자들의 앞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판저널을 읽게 된 것을 계기로 앞으로 혼자서 책을 향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는 다른 독자들에게 성큼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책의 매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아가기를 다짐해본다. 나뿐만 아니라 출판저널을 읽는다면 모두가 나와 비슷한 바람을 소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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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