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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Sep 26. 2020

[도서리뷰] 목소리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다

책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불편한 세상 속 작아지는 목소리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일은 내 삶을 자연스럽게 둘러싸고 있는 차별을 직시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내면화한 가부장제적 성차별주의를 버려가는 일이었고, 이 일은 곧 사실 여태껏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목소리를 온전히 내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부끄럽게도 아니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목소리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나의 발화는 여태껏 당연시되어왔던 일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며, 이것은 곧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페미니즘은 이제까지 많은 이들이 절대적인 사실, 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근원적 노(NO)’를 제기하는 것이기에, ‘불편한 진실’이라는 점이다. -252쪽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에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대화 주제가 되기도 했다. 이 단어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후, 내면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는 반면 정작 밖으로 꺼내어지는 목소리는 수없이 내 안에서 검열되고 작아졌다. 이렇게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는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번에 읽게 된 강남순의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스스로 나에게 목소리를 찾아주었다. 불편한 세상에서 뭐가 불편한지 정확히 언어로 옮길 수 없었던 나에게 언어의 도구를 잡도록 도와주었고, 작아지는 목소리를 키워가는 시간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          



페미니즘의 앞에 선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조우하는 사람들 전부 각자가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는 다를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던지는 일곱 가지 질문을 따라가며 자신 안의 페미니즘을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로 시작하여 성차별, 여성혐오, 페미니즘들, 남성과 페미니즘의 관계,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세계까지 페미니즘에 대해 차근차근 알기 쉽게 질답을 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최대한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페미니즘들의 입장을 소개하려고 노력한다.     


페미니즘을 접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여러 개념어를 사용하면서 그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함의를 알려주기도 한다. 결국에 에필로그에 이르러 저자는 이 책이 ‘강남순의 페미니즘’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말했지만, 이 책은 누구에게나 페미니즘을 조금 더 잘 알기 위해 꺼내 들기에 좋은 책이다.          


여러 페미니즘 도서와 함부로 비교할 수 없지만, 이 책은 특히 강의를 듣는 마음으로 읽었다. 일곱 질문을 바탕으로 그에 답하며 일목요연하게 구성된 글을 통해 페미니즘과 세상의 관계를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 ‘Key Ideas Box’라는 이름의 요약글이 강의록을 정리해놓은 것처럼 다시 한번 책 속에 흩어진 여러 개념을 짚고 넘어갈 수 있다.     


저자가 이런 방식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여 전달하려는 이유는 ‘좋은’ 이론이 ‘좋은’ 변혁적 실천을 불러온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론과 담론은 연장(tool)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이론과 실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단순히 페미니즘의 이론서로 그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를 넘어서 나의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페미니즘은 하나인가? 라는 질문에 아니요,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은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단순하고 납작한 인식에 그쳐있다는 느낌이다. 이 책은 다양한 페미니즘의 입장별 관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만의 페미니즘을 찾아가기를 독려한다.      


    

내가 앞으로 내야 할 목소리는     


페미니즘을 알아가는 일은 내가 발화의 주체에서 밀려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그동안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누군가에 의해 ‘대상화’되어왔다는 자각, 주체로 서기 위한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의 과정에서 분명히 이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거의 백 년에 가까운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현대의 참정권을 당연하게 여겨온 내게 많은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당연한 것이 과거에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 현재도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 과거의 투쟁을 기억하고 그 투쟁 정신이 오늘날로 이어져야 한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페미니즘이 ‘여성도 인간’이라는 주장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인식에 이의제기하게 된다. 우리가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물음표를 붙이면서 ‘탈자연화’가 시작되며, 근원적인 물음, 즉 ‘뿌리물음’을 하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은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또는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왜’라는 물음표를 붙여보는 것이 바로 ‘뿌리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뿌리물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탈자연화’다.  -64쪽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항상 내야 할 목소리는 “왜?”가 되었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워딩이 만연한 사회가 왜 불편한가? 라는 마음속 의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던 적이 있다. ‘형제 코드’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그 답을 찾았다. 이 사회에서는 남자들의 형제 코드를 더욱 부각하기 위해 여성들은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간혹 ‘여적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그들에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해서 나도 모르게 “정말 그런가?” 라고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당연히’ 아니다.     


*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은 내가 지난 시간 고민해오던 내가 지향하는 세계를 설명해주는 단어였다.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젠더 정의뿐만 아니라 계층, 인종, 국적, 성적 지향, 장애 등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정의가 실현되는 세계이다. 아직은 머나먼 이상향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의 목소리와 같은 세계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한 언젠가 꿈의 세계가 현실이 될 것이라 믿는다.


백 년 전,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던 여성의 권리가 당연한 현재의 세계가 오도록 노력한 것처럼 분명 현재의 노력은 미래의 우리가 꿈꾸는 세계가 당연한 일이 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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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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