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현재 감정을 서술하시오.
누군가 당신에게 “현재 당신의 감정 혹은 기분을 말해주세요.”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기쁘다, 슬프다, 화가 난다, 행복하다, 그저 그렇다. 정도의 범주 안에서 한정된 대답을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시기를.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나의 감정이 저렇게 적은 단어들로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내 안에는 더 풍부한 감정의 세계가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24시간 365일 느끼는 각양각색 감정의 이름을 알아가고, 내 마음속 우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자기조절능력’을 배우기 위하여 <예술적 감정조절>을 집어 들었다.
<예술적 감정조절>의 ‘버거운 감정을 손쉽게 이해하고 스스로 조절하는 비법’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방치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연습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방법론을 1부 이론편에서 설명하고, 2부 실제편에서는 예술 작품 속 인물의 감정을 분석하며 방법론을 적용해본다.
이론편은 저자의 전작인 <예술적 얼굴책>에서 더 상세히 이론적 연구를 소개하였고, <예술적 감정조절>에서 축약, 반복하여 다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확장, 심화된 이해를 위해서는 두 책을 비교하여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처음 이론편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낯선 개념과 이론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음양표를 시작으로 감정조절법에 대한 개념까지, 낯선 만큼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러 비유를 통해서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저자의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2부 실제편으로 넘어가면 끙끙대며 이론편을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실제편에서는 저자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에 등장하는 28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그들의 감정을 ‘감정조절법’에 따라 분석한다. 예술작품에 조예가 깊은 저자의 작품에 대한 설명은 미술관을 간접 체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한다.
다양한 미술 작품의 세계에서 작품 속 감정을 마주하는 체험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편은 작품을 소개하고 ‘감정조절표’에 의거한 평가와 ‘감정조절법’을 적용해보는 세 단계의 일관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렇게 28명의 인물을 만나면서 그들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안, 자연스레 나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실제편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약간의 변주가 가미된 통일성 있는 마무리 문단이었다.
그런데 내 목소리는 과연 유효할까? 그리고 누구에게? 내 마음길을 따르면 우선은 그럴 법하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일상의 <동작>으로, <생각>으로, <활동>으로. 그러다 보면 ‘내일의 나’는 드디어 ‘오늘의 나’가 된다. 반성과 성장의 시간, 잠깐 명상한다.
- 173쪽
저 반복되는 문단을 계속 읽다 보면 마치 주문처럼 문장들이 가슴 속에 남는다. 마지막엔 명상하기, 스트레칭을 하기, 하늘 보기, 노래를 부르기 등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저자의 팁이 적혀있다. 장마다 변하는 저자의 팁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정을 자각하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끝나면, ‘감정조절법’에 따라 순법과 잠법 그리고 역법이라는 세 가지 방법론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저자 나름의 해석으로 들려준다.
여기서 ‘나름’의 해석이라고 하는 이유는, 저자도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데 저렇게 많은 방법이 필요해? 라고 의문을 가질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감정은 우리가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다. 여러 안을 가진 채로.
- 292쪽
돌이켜보면 나에게 감정이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닥쳐오는’ 것이었다.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를 서서 맞는 일에 가까웠던 것 같다. 감정은 내가 감정을 인지하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을 수행하기 전에 나를 덮쳐왔고, 그래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문장이 가슴 깊이 공감되었다. 여러 가지 제시된 감정들을 조절하는 상세한 방법론을 읽어가는 일은 밀려오는 감정에 준비된 자세를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아무래도 감정은 추상적 이다 보니 이렇게 세세한 감정들을 인식하고 인식한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놀라운 성과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인상 깊게 읽은 한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데, 토마스 폴록 앤슈츠의 <장미>라는 작품이다.
A Rose , 연도미상, 토마스 폴락 안슈츠
저자가 이 그림 속 인물 ‘레베카 휠런’에게서 읽어낸 수많은 감정 중 내가 꽂혔던 감정의 이름은 ‘직면하는 패기’와 ‘주체적인 의지’였다. 만약 감정의 이름을 알기 전에 작품을 바라본다면 어떤 감상을 남기게 되었을까? 확실한 것은 감정의 이름을 작품에 붙여보는 순간, 작품을 보는 행위는 훨씬 더 즐거워진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감정의 이름들을 통해 그림 속 인물의 서사를 상상해보는 행위가 가능해진다. 저렇게 패기 넘치고 주체적인 의지를 가진 여성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의 성격은 어떠할까? 라는 상상을 통해 그림 속 고정된 이미지의 인물은 생생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나의 감정을 마주하는 일 외에도 이렇게 예술작품 속 인물과 교감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A-1.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
이 책을 통해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감정의 이름을 만났다. 그리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순간, 감정에 휘둘리던 순간을 많이 떠올렸고 그 순간들에 미숙했던 나 자신을 마주 보게 되었다. 최근에 감정이 태도가 되지 말자, 라는 말을 스스로 많이 되뇌었는데 앞으로는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잠시 명상을, 스트레칭을, 하늘을 보며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A-2. 평온함의 희망
감정이 널뛰도록 두지 않는 것은 곧 마음의 평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마음 속 세계가 큰일 없이 소탈하게 굴러가기를 바란다. 누군가 내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키더라도 큰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일, 그것은 곧 내 마음의 우주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나의 감정은 나의 일부이므로, 이것으로 인해 내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행위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느끼는 내 감정은 이러하다. 이렇게 내가 현재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나 자신의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어색한 사람들에게, 새롭고 낯선 예술적 감정조절론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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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