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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Aug 06. 2020

[도서리뷰] 둔감해진 감각을 깨우는 공간의 힘:더터치


1. 공간에 담긴 마음 읽기 


어렸던 어느 날, 부모님을 위한 집을 디자인했던 기억이 있다. 

(어디선가 주워 들어온) 건강에 좋다는 황토로 벽을 만들고,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큰 유리창이 있고, 바로 옆에 부모님을 위한 텃밭이 있는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잡한 디자인의 집이었겠지만, 그 그림을 받아든 부모님은 “우리 딸이 집은 지어준다니, 우린 늙어서 집 걱정은 없겠네.”하고 미소 지어주셨던 따뜻한 기억이다. 

 

더 터치:머물고 싶은 디자인


책 <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은 내가 오직 부모님을 위한 공간을 상상하고 그려냈듯이, 누군가가 타인을 생각한 마음을 담은 공간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 속에 소개된 25곳의 공간들은 각자 그 공간에 머무를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공간들이다. 25곳의 공간들에 담긴 마음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자신을 위한 공간에 담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2. 공간에 담긴 가치 알기  


이 책은 LIGHT(빛), NATURE(자연), MATERIALITY(물질성), COLOR(색), COMMUNITY(공동체) 라는 인간 중심적 건축 디자인의 다섯 가지 본질적인 요소로 나누어 공간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의 가치는 “건축은 가치들의 표현”이라는 노만 포스터의 말처럼 킨포크와 놈 아키텍처가 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는 것이다. 또한 “좋은 디자인이란 시각적으로만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감각과 이어진 것이어야 한다.”는 소개말처럼 인간이 건축과 연결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평소 건축 혹은 공간 디자인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이 책에 소개된 공간을 들여다보고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공간이 인간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간을 느끼는 일이 우리의 삶을 한 층 더 풍부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빛은 분위기와 공기를 만드는 원천이다. (26쪽)”
“건축물이 자연에 속하고 자연이 건축물에 속한다. (93쪽)”
“빛의 물질성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며 시시각각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145쪽)"
“색은 사이 공간으로 그쳤을 공간에 목적성을 더해준다. (197쪽)”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절제된 건축은 어쩌면 공동체의 틀을 만들고 그 공동체가 번영하고 진화하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231쪽)”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이 다섯 가지 요소들이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과 그 영향에 대한 문장들을 읽다 보면 공간에 둔감했던 감각들이 예민하게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3. 삶과 디자인의 평행이론 


삶은 건축이고 건축은 삶의 거울이다. - 이오 밍 페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섯 가지 요소들은 건축 디자인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과 우리가 삶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유사한 점이 많다. 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평소 즐겨보는데, 그 이유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의 건축 철학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철학으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 역시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공간들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각 요소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대화, 인터뷰, 글을 수록함으로써 그들의 공간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문장들을 읽으면서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시선에 대해 배우게 된다.  



자연광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빛이다. 낮에는 자연광을 흠뻑 흡수하고, 늦은 오후와 저녁에는 빛을 최소화한다.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보는 일은 참으로 근사하다. - 26쪽


이렇게 평소 아무렇지 않게 누려왔던 햇빛의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되고, 그 존재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삶의 일부가 조금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4. 공간을 통해 삶을 성찰하기  


이탈리아에 있는 묘지인 ‘톰바 브리온’에 대한 기록이 인상 깊다. 이곳을 디자인한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는 “죽음에 사회적이고 시민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225쪽)”이라고 말하면서, 묘지라는 공간이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톰바 브리온


묘지를 놀이터로 쓰이길 바랐다니, 다소 황당한 말이다. 하지만 이 건축가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면 ‘죽음’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톰바 브리온의 모습은 ‘죽음’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보다는 콘크리트가 주는 차가운 이미지와 자연광이 공간을 감싸는 따뜻한 이미지가 공존하는 느낌이 든다. 이 상반되는 이미지의 공존은 죽음을 마냥 고정된 이미지로만 소비하고 죽음에 대해 먼 거리감을 느꼈던 편견을 부순다. 


*

 

이 책은 ‘집’이라는 공간을 인간을 괴롭히는 자연-예를 들면 비나 눈, 나뭇잎, 자연재해, 바람 등의 자연 요소들-에 맞서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었던 생각이 바뀌게 되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만, 비로소 ‘머물고 싶은’ 디자인이 된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꼈다. 


빛을 막아주는 암막 커튼, 꽉 닫힌 창문, 무채색의 벽지, 화단 하나 없는 집 주변의 공간, 딱딱한 돌계단, 옆집 이웃의 얼굴도 모르는 지금. 이런 내 주변을 둘러싼 공간의 요소들을 확인하다 보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뒷받침되어 있는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은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이렇게 공간을 성찰하는 동안 자연스레 그동안 공간에 둔했던 감각들이 깨어나 공간으로 얻을 수 있는 삶의 행복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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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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