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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Oct 14. 2021

불면일기(不眠日記)

21.10.14 첫번째

저녁을 먹고 나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잠이 온다. 그 잠을 이겨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대부분 실패한다. 그리고 시작된다, 기나긴 불면의 밤이.


낮에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밤의 시간에는 잠을 '잘'자야할 것만 같다. 그래서 잠이 안와도 일단 누워는 있는데, 이렇게 누워서 양을 세다 보면 잠이 오겠지 싶다. 하지만 양이 잠을 재워주는 시간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막을 내린 것 같다. 양들은 각양각색의 외양을 가진 채 자꾸만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 말을 걸다 사라진다.

빛을 멀리 해야한다는 말에 핸드폰을 멀찍이 두고 생각에 잠긴다.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잠이 전혀 오지 않아 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확인한 김에 좋아, 수면음악을 들어보자 싶어 새벽이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내려도 끝이 없는 수면음악 영상들 중 하나를 들어가본다. 자연스럽게 나만큼 잠 못이루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하고 댓글을 보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의 걱정들 때문에 잠 못이루는구나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걱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걱정은 아닌 것 같고, 대체 잠 못이룰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잠이 안오나 억울하기도 하다.


빛을 멀리하라고 했지만 도저히 지루한 영상을 보는 게 아니면 답이 없을 것 같다. 운이 좋으면 영상을 조금 보다가 잠에 들고, 운이 나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게 된다. 혹은 보는 걸 멈출 수 없게 되거나. 서양 고전은 대체로 읽다 보면 졸린데, 이상하게 책을 덮고 스탠드를 끄면 다시 잠이 물러간다.

결국은 방이 푸르스름해질 때까지 어딘가 멍한 정신과 함께 어둠이 물러나는걸 본다. 새벽의 푸름은 대체로 어떤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아침형 인간이었다면 이 푸름을 밖에서 만끽할 수도 있겠지만, 불면 인간은 이렇게 방에서 느껴지는걸로 충분하다. 이렇게 오늘도 결국은 실패했구나, 싶다.


밤에 잘 자지 못하고 정오가 될 때 쯤에야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산 지 꽤 오래되었다. 이미 몸은 완벽 적응했지만, 마음 만은 여전히 불편하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라는 마음은 한 켠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반대심리로 이렇게 못살건 또 뭐야 싶기도 하다.


오늘도 잠 안오는 새벽, 문보영 시인의『일기시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12시부터 5시까지. 불면의 밤 동안 시인은 글을 쓴다.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 문장을 내멋대로 다시 읽는다. 불면의 밤을 딱 반 정도만 사랑하는 내가 불면의 밤을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좋아해보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해본다.


일기시대 중 문장 하나

...친구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친구와 비슷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친구와 나 사이의 빈 공간에서 나의 것도 친구의 것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하고 우리의 영혼이 그 빈 공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잡초처럼 쉭쉭, 자라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친구인 자들은 빈 공간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29쪽


오래된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나와 친구들 사이의 빈 공간에는 어떤 것들이 스쳐 지나갔을까. 함께 지낸 시간이 오래되었음에도 정말 우리는 비슷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또렷하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단단해주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불면의 밤에 주로 생각하는 건 사람에 대해서이다. 사람들이 한 마리의 양이 되어서 잠들게 해주면 좋을텐데, 사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그렇게 지난 과거를 떠올리고 그 사람이 본 내 흑역사가 생각나면 오려던 잠도 깨는 듯하다. 마무리는 내가 생각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기도로 한다. 본인 의사도 묻지 않고 이렇게 밤의 시간동안 생각하는건 왠지 조금은 실례처럼 느껴지니까.


요즘 사운드 클라우드로 노래를 듣는다.


https://soundcloud.app.goo.gl/Dtf8WRZVhRYERCNk6


누군가를 얕게 좋아하는 난 오랜만에 이 아티스트의 팬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요즘 기나긴 불면의 밤을 이 노래들과 함께 하고 있다.

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며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손가락이 따라준다면 조만간 무언갈 시작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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