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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May 25. 2022

재방(在傍)으로의 위로

- 기리시마 도오루씨에게 보내는 편지 

법정, 영혼의 모음/오야마준코, 하루 100엔 보관가게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과거 수업시간에 제출한 수필을 퇴고하여 올립니다:-) 



기리시마 도오루씨에게


1.

  도오루씨,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이제 막 여미던 코트 깃을 풀어헤치고 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풀린 날씨를 만끽하는 활기찬 기운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도오루씨가 살고 있는 거리도 이제 막 개학을 하여 당고를 사먹는 학생들로 가득하지 않을까요. 그 거리의 80엔짜리 크로켓은 여전한가요. 생각해보면 밖을 잘 나서지 않는 도오루씨는 어떤 걸로 봄이 옴을 느끼는지 새삼 궁금합니다.   

 100엔이면 우리나라에서는 1000원 남짓한 돈입니다. 요즘이라면 어디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지도 못할 돈입니다. 하루에 100엔으로 모든 물건을 보관해준다는 당신의 가게에 대해 듣고 이 수상하고 신기한 가게에는 어떤 손님들이 다녀갈까 궁금했습니다. 당신에 대해서는 그저 듣기만 한 것밖에 없지만 그 보관가게가 마치 당신과 같다, 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당신을 닮은 가게에서 위안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어딘가 위안을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실없는 상상이지만, 제가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 가게의 어느 물건이 되어(포렴이나 진열장과 같이) 당신과 당신의 손님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싶어졌거든요.      

2. 

 ‘분명 이곳은 모두가 돌아올 장소입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입니다.’ 


가게의 포렴이 해준 말입니다. 당신은 듣지 못하겠지만(독자인 저만이 포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포렴의 말처럼 당신의 가게는 언제나 가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고, 변하지 않아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는 곳일 것입니다. 위에 당신의 가게가 당신을 닮았다고 썼지요. 왜 한 번 다녀간 사람은 잊지 않고 당신의 가게를 다시 찾는 것일까요? 

 정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위에 유언장 하나 맡길 만한 믿음직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기업의 사장님은 당신을 계속해 찾아갑니다. 처음엔 그냥 유언장을 맡길 목적이었겠지만, 계속 맡길 필요도 없는 다른 서류를 부탁하며 도오루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옵니다. 사장님이 돌아가신 후에 찾아온 집사는 당신께 당신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사장님에겐 큰 조언이자 위로가 되어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누군가에게 위로를 하는 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저는 누군가 제게 기대오면 상대방의 슬픔이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제가 그런 마음으로 내뱉은 말들은 상대방들에겐 그저 ‘정론’이 아니었을까요. 요즘말로 바꿔보면 ‘꼰대’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도오루씨는 손님이 찾아오면 일단 맡길 물건을 받습니다. 손님의 이름을 묻는 일과 보관일 수를 계산하는 일이 끝나면 당신은 말수를 줄입니다. 보관할 물건에 대해 말을 할지 말지는 손님이 결정할 몫이지요. 그리고 만약 손님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면 당신은 기꺼이 가게의 포렴을 내려 장사를 접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요.

 

다시 포렴이 해준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합니다. 위로라는 것은 당신의 가게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돌아올 곳을 마련해 놓는 것. 상대방의 말을 기꺼이 들어주기만 할 수도 있는 것. 이렇게 생각해보니 위로라는 것이 생각보다 부담스럽고 무거운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재방(在傍),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동안 이것이 무서워 슬며시 도망치려고도 했었던 제 자신이 새삼 부끄럽습니다. 


 3. 

도오루씨, 어린왕자는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소년과 청년을 보내고 아저씨가 돼서야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당신은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아이자와 아주머니의 낭독을 열심히 듣던 당신의 모습을 본다면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꽤나 재미있었던 모양인데요. 눈 중에서도 마음의 눈과 다른 감각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엔 무엇이 보일지 궁금합니다. 

 저는 요즘 들어서 저 어린왕자의 말에 굉장히 공감하는 편입니다. 소중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 소중한 것이 곁에 계속 있어서 그 존재를 당연시 여기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존재의 부재를 느낄 때 비로소 소중함을 느낀 적이 저도 많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각박하다고 다들 말합니다. 저를 비롯한 요즘 사람들은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들여다 볼 정신도 없이 바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바쁘면서 왜 바쁜지 모르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하다못해 길가의 꽃이나, 머리 위의 하늘 한 번 바라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소중한 것은 내 곁에 존재하는 것이며, 주위를 둘러보면 보일 것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자각하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 사실을 자꾸만 잊으니 눈에서도 자꾸만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오루씨의 세상이 궁금합니다. 그 어느 곳보다 평화로운 거리의 조그마한 한 가게에서 단골손님이나 지나가다 잠시 들르는 손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는 당신의 삶에는 어떤 것이 보일지 궁금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감각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앞으로 눈을 크게 뜨고 다니기로 다짐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4. 

  도오루씨는 상대방의 위해 본인의 말을 아끼듯 자신의 이야기는 이 책 속에 거의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도오루씨가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 주변에 좋은 물건과 좋은 고양이 사장님과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양이 사장님이 말하길 주인님의 세계는 실제 세계 보다 조금 더 아름답고, 평화롭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고 잘 지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다음에 도오루씨의 이야기를 펼칠 때는 도오루씨가 말없이 준 깨달음을 실천하고 있기를, 도오루씨는 거기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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