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방인>을 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막이 오르고, 잠깐의 침묵 끝에 무대 위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유명한 첫 문장이자, 연극 〈이방인〉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이다.
여기 사형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뫼르소'. 그는 알제라는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한 청년이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뫼르소는 한 사람을 총살했고 법정에서 그를 살해한 이유로 ‘태양 빛이 너무 뜨거워서’라고 진술한다.
뫼르소의 진술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추적한다.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흘리지 않은 채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권하며 잠을 자는 등 슬픈 기색이 전혀 안 보이던 사람, 어머니가 죽은 정확한 날짜를 모르는 사람, 장례식 다음에 바로 데이트하며 코미디 영화를 본 사람, 불량한 친구를 도와 아무렇지 않게 거짓 진술을 한 사람이었다. 그의 행적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통상적이라 생각하는 관습 혹은 규칙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는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았고, 올바른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런 뫼르소를 보통 사람들과 섞여 지낼 수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사 덤덤하고 세상사에 초연한 듯 보였던 뫼르소는 사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감옥에 수감되어 자신의 사형 선고에 대한 판결을 기다린다. 그렇게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 골몰한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며, 자신이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 증오와 함성으로 맞아주기를 바란다.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자 부조리극의 선도주자인 '이방인'. 『이방인』이라는 책은 몰라도, '오늘 엄마가 죽었다'고 시작하는 강렬한 첫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만큼 이 책이 가진 유명세는 대단하다. 1942년에 출간된 『이방인』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 책을 각색하여 만든 연극 〈이방인〉 또한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유사한 마음으로 백 분여의 극에 빠져들게 만든다.
유명한 원작 소설을 각색하여 연극으로 선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할 것인가 혹은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할 것인가. 연극을 보게 되었을 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연극 〈이방인〉은 원작 소설을 존중하여 극을 이끌어가기를 택했다.
이번 극을 연출한 임수현 연출가는 "카뮈의 사상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독백과 대화, 서술과 연극의 공존을 추구하며, 뫼르소의 시선으로 '이방인'의 세계를 무대 위에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설 속 활자 안에 잠들어 있던 인물들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 숨 쉬며 관객들에게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런 극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즐거운 경험이었다.
연극 〈이방인〉은 앞서 언급했듯이 원작 소설을 충실히 재현한다. 원작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본다면, 소설 속 문장이 어떤 방식으로 배우의 해석에 따라 발화되는지, 극 중 어느 부분이 각색되었는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극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오히려 뫼르소의 이야기,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공방에 몰입하여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진정한 연극의 묘미는 연기를 하는 배우의 대사와 몸짓에 집중하여 한껏 생동감을 느끼는 일, 그들이 열정적으로 휘젓고 다니는 무대 위를 나만의 시선으로 채워보는 일이니까 말이다.
연극 〈이방인〉은 2017년 초연 이후 6년 만의 재연이다. 그중에서도 뫼르소 역인 전박찬 배우는 초연 이후 지금까지 주인공을 맡아 열연 중이다. 6년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차예준 배우가 더블캐스팅으로 함께 열연한다는 점이다.
연극을 N차 관람하기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두 배우 각자가 해석한 ‘뫼르소’ 역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지난 24일에 공연의 시작을 열었던 전박찬 배우는 이 역할로 과거에 신인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그만큼 극 대부분을 차지하는 뫼르소의 독백을 힘차게 이끌어가며 관객이 뫼르소에게 이입할 수 있도록 극을 장악하는 힘을 보여준다. 두 배우 뿐만 아니라 초연부터 함께했던 배우와 이번에 합류하게 된 배우진이 시너지를 발휘하여 초연 때와는 또 다른 해석과 연기로 관객 앞에 서고 있다.
뫼르소의 독백 속에는 카뮈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가 남겨져 있는 듯 하다.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한 일이 가득하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고 직시하는 인간 뫼르소. 우리는 이러한 뫼르소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자기 삶에 대해 거짓 없이 솔직하게 말해온 뫼르소의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한번 생각해 보기를 권하는 작품, '이방인'을 이번 연극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보기를 권한다.
연극 〈이방인〉은 오는 9월 22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극인 만큼, 소설 『이방인』을 즐거이 읽은 독자 혹은 카뮈의 글을 연극으로 먼저 만나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번 기회에 기꺼이 즐겨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