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주 교수님의 <복음의 공공성> 후기

복음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이며 공적이다.

by 전진형
757_1815_1753.jpg 복음의 공공성 - 김근주



복음의 공공성 - 김근주


김근주 교수님이 2017년도에 펴낸 '복음의 공공성'을 이제야 다 읽었다. 왜 이제야 읽었나 싶을 정도로 공감과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들이 많았다. 신학을 배운 적이 없어 궁금한 것이 많은 내겐 교과서 이상의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읽는 내내 '아 이건 무조건 사서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싶었다. 성경을 읽었다 해도 겉핥기 식의 통독이었고, 성경 가이드북을 몇 권 읽었다 해도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이해정도 였을 뿐이었다. 특히 구약 성경은 그저 '고대 근동 신화의 모티브로 만들어진 하나님 말씀과 이스라엘의 시작부터 디아스포라까지의 역사 정도'의 앎만 있었을 뿐이다.


이런 얘기 하기엔 참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구약성경을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하나님의 구약 말씀이 내게 어떻게 들려져야 하는지, 그 시대적 배경안에서 어떠한 말씀으로 얘기를 한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너무나 커서 이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에 있길 바라며,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내가 너무나 자랑스러워지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믿음에 관하여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복음은 크리스천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독교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복음도 그렇다. 보통 복음이라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신약만의 유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좋은 소식, 복된 소식, 복음. 하지만 구약시대에도 복음은 있었고, 그 복음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지칭하기 이전의 의미가 있었다. 바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 질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세상 질서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복음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그 통치하심의 연장선이다. 이제 것 성경을 읽으면서 구약은 그저 신약을 위한 책으로만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 하나님나라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들 원하는 대로 법을 만들어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사회의 가장 나약한 사람들, 과부, 고아, 병자, 나그네, 외국인을 위한 제도와 틀을 만들어서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나라다. 정의와 공의의 말씀들로 가득 찼던 구약성경을 이제야 제대로 읽게 되었다. 가슴이 뜨거웠다.


이십 대 초반 군에 입대하고 나서 몇 날 며칠 동안 내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난 어떠한 꿈을 가져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기도하며 깊게 고민한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온 나의 꿈이, '헐벗은 자를 입히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노숙인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굶고 있는 아이들과 사회 취약계층이 고통받는 여러 뉴스를 통해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묵상하다 보니 나온 결론이었다. 후에 놀랍게도 이사야 58장을 보게 되며 내 꿈이 말씀과 일치됨을 알게 되고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란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책에서 말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통한 원죄를 인간의 '자기애'로 표현한다.


"오늘날 원죄라는 모호한 표현이 교리적으로 널리 쓰이지만 사실 원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고 내 탐심 충족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아담과 하와 안에 있던 죄는 우리 안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기애야말로 말 그대로의 원죄이며 원죄의 가장 근본적인 결과는 관계의 파괴다. 죄는 홀로 있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존재하게 하신 관계의 파괴다."


특히 개인적인 자기애도 있지만, 공동체의 자기애가 관계를 파괴한다. 나의 가족만을 위한 자기애, 나의 교회만을 위한 자기애, 내가 속한 나라,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자기애가 결국 선악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얼마든지 상대를 제거하고 죽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대라는 존재 때문에 내가 불편하다면 그 존재를 없애버린다. 폭력이란 자신의 뜻과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를 짓밟고 힘으로 눌러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는 상대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자기애는 이렇게 하나님나라에서 이뤄져야 할 정의와 공의가 실현할 수 없게 한다. '자기애' 이것이 결국 하나님나라를 파괴하는 원죄인 것이다.


평소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이 많다. 자본주의 속에서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가지만 자본주의가 정말 하나님나라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만 계속해서 잘 살게 되는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인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오체의 건강과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우린 이것들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는 말에 격한 공감을 느꼈다.


성경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복음의 공공성을 옆에 놓고 성경을 많이 읽어야겠다. 어떤 가이드북보다도 훌륭한 책이다. 느헤미야 수업 때 교수님의 가르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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