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증가 C.S.루이스의 논리적으로 하나님 변증 하기
신앙인으로서 늘 고민해야 하는 이성적인 문제들이 있다. 간단한 질문이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답을 내리기에는 공부가 필요하거나, 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들. 짧은 질문에 짧은 답으로 명쾌하게 떨어지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종교. 이 신앙과 관련된 답에서는 더더욱 그렇기 마련이다. 유명 학자나 전문가들이 쓴 책을 보며 답을 구해보지만 공부가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은 말이 어려우면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런 점에서 C.S.루이스는 쉽게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보배와 같은 사람이다.
<순전한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가 지켜야 할 것과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을 법으로 지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법치주의는 우리 삶의 일부이고 지키지 않는 다면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이 법이란 것이 있기 전에 더 근본적인 것, 양심과 도덕에 대해 C.S.루이스는 집중한다. 양심과 도덕은 왜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들을 알고 있으면서 왜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을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지구 위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묘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연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야 말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입니다."
이야기꾼답게 이야기 두 개를 던지고 하나씩 천천히 풀어가는 문체가 아주 흥미로웠다. 게다가 비유 능력이 아주 탁월해서 무릎을 몇 번이나 탁 쳤는지 모른다. 왜 20세기 기독교 최고의 고전인지 책에 나오는 비유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도 술술 읽힐 정도이니 얼마나 쉽게 썼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번역의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더 쉬운 단어로 쓰여도 괜찮을 것 같은 말들이 많았다. 원서에는 어떻게 쓰여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뭐 그냥 잘 번역된 책이겠거니 하고 말았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주제는 <시간과 시간 너머>라는 소제목의"하나님은 정말 미래를 알고 계실까?" 하는 내용이었다. 하나님이 미래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모든 것들이 정해진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것들과 미래에 할 일들,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것들과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다 알고 계시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더 이상 자유의지가 아닌 것이다. C.S.루이스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을 예견하신다면 우리에게 행동의 자유가 있다고 보기는 대단히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말하는데 이 설명이 아주 나이스 하게 들렸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모든 생물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지만 우리보다 더 고차원에 계신 하나님은 과거에도 계시고, 현재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시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볼 뿐이다. 어제 한 일을 기억하시는 게 아니고 '지금'도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나의 어제가 아직 '지금'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모든 날이 '지금'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미 내일에 계시면서 당신을 지켜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행동하기 전까지는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행동을 하는 순간, 하나님께는 이미 '지금'이 됩니다."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악스러운 일들을 말하며 신은 대체 어디에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제3세계까지 안 가도 된다.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만 봐도, 너무나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나 역시 보통 사람들이라면 믿기지 않을 만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면서 지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신앙심은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자라난 부정적 생각이 이성적 사고로 연결되면서 난 자연스레 하나님이 미래를 알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모든 미래를 알고 있고, 미래는 정해져 있으며, 다 뜻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개념이 정리가 안되었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최악인 것은 그러한 생각을 고통 속에 있는 타인에게 전하며 위로랍시고 말한다는 것이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하나님에 대한 고민의 부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멘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은 꼭 순전한 기독교를 깊이 묵상했으면 좋겠다.
기독교에 대한 기본 개념을 작가가 훌륭하게 풀어주어서 20대 초반에 엄청난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읽는 내내 다시금 피어올랐다. 서른 중반이 되면서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일 먼저 순전한 기독교를 다시 읽게 되었다. 역시 고전은 다시 읽어도 좋다. 비록 시대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몇 있었지만, 작가가 지금 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면 분명 수정했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