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에서 찾은 설득의 기술
지지 않는 대화 - 다카하시 겐타로 / 양혜윤 옮김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 대해 매번 궁금해하기만 하다가, 이번에 제대로 공부해볼 겸 하여 책 한 권을 구입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시학'이라는 제목으로 그리스어 원전 번역한 책이다. 책 표지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그림을 쓰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철학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읽고 있던 책들을 마저 읽고 읽으려 기다리던 어느 날, 집 근처 중고 서점을 갔는데 거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에 대한 책이 있길래 집어 들었다. '지지 않는 대화'라는 제목이 구미를 당겼다. 안 그래도 스피치에 관심이 많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대해 깊게 공부해 볼 생각이라서 그랬는지 뭐에 홀린 듯 구입했다. 중고책이라서 가격 부담도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 즉[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에 대해 아주 쉽게 풀어쓴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많이 아는 바는 없지만, 이 세 가지 설득의 3요소는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에 대한 용어 언급이 전혀 없다. '이야기의 설득력 높이기'(로고스), '듣는 사람의 기분 유도하기'(파토스), '이야기하는 사람의 인성 강조하기'(에토스)식으로 풀어서 설명을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쉽게 써야 했나'했을 정도로 내용 전체가 너무 쉬웠다. 전체 페이지는 188장 밖에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한 권의 책이 300페이지 정도 되는 것에 비해 너무 적었다. 종이 질과 겉장이 두꺼워서 188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용은 쉽게 쓴 만큼 아주 잘 이해가 되어서 매우 만족했다.
'이야기의 설득력 높이기'(로고스)에서 설득하는 패턴을 가지고 설득 모델로 만든 '토포스'에 대한 설명을 현대인에게 잘 와닿을 수 있도록 간결하고 친절하게 소개해 준다. 실제 현실에서 있을 수 있을 만한 상황들을 잘 묘사했다. '토포스'가 무엇이냐면 '설득하기 위한 방법'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이란 책이 대단한 것은 주장이나 반론을 하기 위한 설득 방법의 패턴을 찾아서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분석하여 소개했다는 점이다. 그런 패턴을 일명 '토포스'라고 부른다. 토포스는 종종 '논점'이나 '논법'이라고 번역되며 아리스토텔레스 변론술의 중요한 도구이자 특징으로 설명된다.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토포스'란 '설득을 위한 필승의 이야기 패턴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할 것 같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토포스란 근거와 결론의 연장선상으로, 확실한 설득력을 갖게 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해난 '설득을 위한 설득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토포스의 모델로 '정의 / 반대 / 상관 / 기결 / 비교 / 분할 / 선악 / 본심과 포장 / 비유 / 결과 / 일관성 / 억측 / 있을 수 없는 일 / 귀납'이라는 주제로 하나하나 풀어낸다. 쉬운 건 좋은 데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전에 읽었던 책 '오리지널스'를 읽으며 느낀 점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는데,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일본 작가가 쓴 책이라서 그런 건지, 번역이 아쉬워서 그런 건지 몰라도, 한국어로 표현이 어색한 부분이 몇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니 "일본 특유의 자기 계발서 느낌이 난다."라고 표현을 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게 무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내가 느낀 그 어색함이라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시학'을 읽기 전, 쉽게 읽을 만한 책으로서는 딱 좋았던 것 같다. 전에 알고 있었던 설득의 3요소를 자세하고 쉽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 밑줄을 치며 술술 읽어 나갔는데, 조만간 다시 읽으며 타이핑으로 정리하여 변론술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수사학을 배우기 전에 제대로 익히고 넘어가고 싶다. 짧은 내용이라 부담이 되지 않는 게 참 좋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글을 남기는 데, 가슴속 깊게 와닿았다.
설득을 위해서는 상대의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식 변론술을 연구한 20세기의 철학자 카임 페렐만은
세계의 정치적 분쟁들 대부분은 관용 정신이 부족해서,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에게 호소하는 설득의 기술이 없기 때문에 발생되었다고 주장했다.
설득은 상대를 말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납득하에 자신의 주장으로 유도하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른 설득을 가능하게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은
상대를 공격하는'무기'가 아니다.
자신과 상대의 사이에 원만한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도구'이다.
지지 않는 대화 - 다카하시 겐타로
진심으로 상대에게 호소하는 설득의 기술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분쟁이 일어났다는 말이 '진정성'이 부족해서라는 말로 들렸다. 내가 삶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중 하나가 진정성이다. 내 삶에, 내 말에, 내 행동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지 늘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한다. 내가 뱉는 말에 난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을까. 변론술과 더불어 나의 진정성에 대해 한 번 더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