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죽게 하는 것.
세상엔 나를 기죽게 하는 것들이 참 많다. 무언가 하나를 하더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이제 것 살아오며 주어진 상황과 환경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은 나름 많이 하며 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 싶은 것들을 함으로 인해 느꼈던 것은 '난 그저 평범한 비범인'이라는 것이었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공부, 영어, 여행, 블로그, 유튜브, 사진, 독서, 글쓰기 등등.. 어딜 봐도 전문가뿐이다. 내 SNS만 훑어봐도 어찌나 다들 그리 글을 잘 쓰고 사진을 잘 찍는지.. 아무 주제로 글 한 편 쓰고 싶어도 음매 기죽는 바람에 그냥 넘긴 주제만 한 가득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쓰는지 공부했고, 많이 알아봤다. 단순하더라 그냥 많이 읽고 쓰면 된다고 한다. 매일매일 글을 쓰면, 매일매일 글을 쓰기 전보다 잘 쓰게 된단다..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게 쉽지 않은 것도 매우 잘 알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다.'
난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내가 처음으로 '글'이란 걸 쓰기 시작한 것은 '유서'였다. 스무 살 가을바람 불던 자정쯤에 문득, 정말 문득, 내가 지금 죽는다면 지금 갖고 있는 내 생각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무척이나 서글펐다. 마침 싸이월드 감성 다이어리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오글거림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비공개로 전환 후, 눈을 감고 나의 장례식을 떠올리며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형,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가는데.. 어느 순간 레버가 위로 들린 정수기 마냥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미안했다. 내게 미운 행동을 보인 사람들에게도 내가 먼저 미안해지는 신기한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난 이후, 나의 기록을 남기는 일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부터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정해진 다이어리 한쪽 분량을 무조건 채웠다. 어제와 오늘 같은 하루를 살았어도 꼭 한쪽 분량을 채웠다. 그러다 직장에 들어가면서 매일 쓰는 것이 쉽지 않게 되자 한 달에 한 번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며 쓰는 '월말 일기'로 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열두 편의 '월말 일기'가 모이면 1월부터 12월까지 정독을 하고 '연말 일기'로 한 해를 정리하는 정기적 글쓰기를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 가끔 '월말 일기'라는 이름으로 나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 오는 위로가 제법 쏠쏠해서 눈물 찔끔 후 천장을 보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진다. 이렇게 정기적인 글쓰기 말고는 일 년에 몇 번 꽂히는 주제로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는 게 다였다. 페이스북에 남기는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나의 첫 글쓰기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 글로 정리를 하면 속이 시원할 정도로 마음이 후련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을 페이스북에 띄었을 때 거기서 오는 두근거림이 좋았다. 누군가가 나의 생각과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짜릿했다. 하지만 글을 올리고 난 다음 날 아침에는 전혀 짜릿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글이 이상했다. 부자연스럽게 읽히곤 했다. 너무 창피했다. 결국 올린 상태에서의 수정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쯤부터 글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동시에 글에 대한 스트레스 또한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자주 하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걷기와 독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내가 겪은 가장 좋은 방법들이었다. 하지만 슬럼프라면 얘기가 달랐다. 아무리 걸어도, 아무리 뛰어도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았고, 책 또한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계속 말하고 다녔다. 나 슬럼프라고, 이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책을 읽기로 했다고, 그리고 책을 많이 읽을 거라고. 말이 씨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읽히지도 않는 책을 읽겠다며 얘기하고 다녔다. 꾸역꾸역 몇 권이나 읽었을까?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느낌이 계속 되었고, 이대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새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스터디 그룹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선생님과 상담을 나눴는데, 내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마냥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보길 추천해주셨다. 그때 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책이 읽히지 않았던 이유가 나에 대한 믿음 부족이었음을 느꼈다.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고, 책을 읽는 시간이 마냥 아까운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해주자 마자, 누군가가 나의 생각에 동의하고 응원해주자 마자, 거짓말 처럼 슬럼프가 극복되기 시작하면서 책이 읽히기 시작했다.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한 주에 꼭 한 권 이상씩 책을 보는 독린이가 되었다. 읽은 것뿐만 아니라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까지 꾸준히 작성하고 있다.
브런치에서 내가 쓰는 글은 주로 독후감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간혹 나의 생각정리나, 창작 시를 써보려 한다. 한 주에 한 권 이상, 두 주에 세 권 정도 독서를 목표로 삼았다. 브런치에 글을 기고해보고자 했던 것도 사실 "기왕 책 읽고 쓰는 독후감을 한 번 이쁘게 정리해서 올려보자"라는 생각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미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지만, 브런치로 옮겨 볼까 한다. 그리고 창작 시도 올려 볼까 한다. 시 쓰는 것은 학창 시절 때부터 좋아했다. 내 평생 버킷리스트로 '시 집 한 권 펴내기'가 있기에 이번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이곳 브런치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득실득실하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내가 어떻게 작가 심사에 합격했는지 잘 모르겠다. 브런치 홈에만 들어와도 나를 기죽이는 말들이 압박해온다. 꼭 이렇게들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난 이만큼 이만큼 전문가다! 너는? 너는??"
"나는 어디까지 어디까지 해봤다! 너는? 너는??"
난 안 해봤다. 전문가도 아니다. 그냥 책 읽는 거 좋아하고, 책으로 배우는 게 좋다.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고 나의 작은 세상을 얘기하는 게 좋다. 글을 씀으로 나의 가치관을 정리하고, 스스로의 글을 읽음으로 내가 가치 있다 여기는 것에 힘을 싣는 것이 좋다. 좋아서 한다. 나를 발전시키고, 내가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기 위해 한다. 그러니 진형아 "그만 기죽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