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복판에 있는 모텔 입구를 빠져나오듯 집을 나선다. 곧 맞은편에 서있는 거대한 아파트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성스럽게 빛난다. 아파트가 특히 아름답게 빛나 보일 때 우울함은 더 심해졌다. 밖에선 꾹꾹 숨겨가며 잘 살고 있는 척, 괜찮은척하며 지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비참한 기분에 항상 우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에 대한 채찍질이었다.
84년도는 두 가지 혁명이 일어났다. 하나는 애플이 처음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지하’의 탄생이었다. 경제성장률이 10% 시대인 80년대. 성공의 기회는 도시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대도시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집이 필요했다. 500만 호 주택공급계획도 이를 감당할 수 없던 정부는 건축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하공간을 연면적에 포함시키지 않아 그들의 부담을 줄여주이며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일거양득의 전략을 구사한다. 그 결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인 채광을 확보하기 위해 절반만 묻혀도 지하로 인정해주는 ‘반지하 법’이 탄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84년도에 태어난 나는 ’ 밀레니얼 반지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반지하 세대답게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여러 반지하들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서른이 넘어가는 시점에 여러 가지 문제로 2층 전셋집에서 다시 반지하로 돌아오며 반지하에 사는 나의 현실이 부끄러웠다. 누군가 ‘왜 아직도 반지하게 사느냐? 그동안 뭘 했냐?’ 갑자기 물어올 것은 죄책감에 항상 불안했다. 제일 무서운 것은 이렇게 평생 반지하에서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럽고 불쾌한 생각이지만 멈출 수 없었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기력한 날들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장 멋진 아파트로 이사 갈 순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시간을 채찍질과 두려움으로 살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남들에게 자랑은 못해도 스스로에게 조금이 나마 나은 환경을 제공해줄 순 없을까?’ 그래서 나만의 주거개선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현재 나의 반지하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는 곰팡이, 습도, 벌레였다. 곰팡이가 생기기 제일 쉬운 곳은 장판과 벽면이 만나는 코너 지점들이다. 우선 모든 코너의 장판을 잘라 환풍이 되게 했다. 곰팡이는 가리면 가릴수록 그 안에서 더 커짐으로 차라리 뜯어서 환기를 시켜주는 게 좋다. 벽지도 변색되거나 들떠있는 부분들은 안에서 곰팡이가 피었다는 증거다. 이럴 땐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예리하게 잘라낸다. 그렇게 뜯다 보면 결국 벽의 맨 얼굴인 시멘트가 드러난다. 하지만 괜찮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 벽이 곰팡이로 뒤덮이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리고 노출 인테리어가 미적인 가치로 인정받는 요즘 트렌드 때문에 나름의 낭만적이라 생각하고 넘긴다. 습도는 다행히 중고 에어컨으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문제는 벌레다. 여름에 등장하는 모기들이야 다양한 살충제로 해결할 순 있지만 나보다 지하생활을 오래한 듯한 정체불명의 각종 벌레들이 갑자기 출몰할 때가 많다. 초반 지하생활을 할 때는 놀라기도 했지만 30년 차가 넘어가니 이젠 익숙하다. 티슈로 처리할지 퇴출시킬지는 그때그때 판단한다. 생명을 죽인다는 것에 죄책감이 있어 최대한 방출을 선택하려 하지만 내 건강이나 위생을 위협할 것 같은 해충을 발견하면 냉혹한 킬러처럼 처리한다. 유일하게 공생하는 관계는 거미다. 거미는 눈에 잘 띄지 않고 여름에 모기나 파리를 잡아주니 해충은 아니다. 단지 너무 방치하면 거실이나 주방 공간까지 세력을 넓히곤 한다. 그래서 적절히 압력을 가해주며 서로의 선을 지킨다.
그렇게 몇 년을 정리하며 깔끔하게 살았다. 환경이 바뀌며 나의 성향도 바뀌어갔다. 지상의 사이클을 맞추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고 불필요한 만남 대신 책을 읽게 되었다. 흔희 반지하에 산다고 하면 뉴스에 나오는 엄청 열악한 환경에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몇 년간의 환경개선 프로젝트를 거치며 발견한 것은 어떤 공간에 살던지 누구나 자신의 환경을 최적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반지하가 나에게 알려준 삶의 지혜이다.
오랜 반지하 생활은 나에게 부지런함을 가르쳐줬다. 조금만 방심하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는 반지하는 정글과 같다. 냄새 및 온 습도로 집안 상태를 확인하며 습도를 관리하고 쓰레기는 그날그날 처리한다. 벌레들은 게을러지면 바로 치고 나오니 항상 경계하고 벌레들이 생기는 원인인 음식물쓰레기들은 깔끔하게 처리한다.
반지하에 살건 좋은 집에 살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진 정원을 어떻게 가꾸는가 이다. 아무리 넓은 집도 돼지우리 처럼 관리하면 소용없다. 반지하도 자신의 생활에 맞게 검소하고 깔끔하게 잘 정리해가며 산다면 좋은 공간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신의 공간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