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에게 바치는 고백

by 진지우기

내 친구 'L'


'L'은 여자 아이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사실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것과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고, 나처럼 반지하에 살았다. 사교성이 좋고 활달했던 'L'은 겉으로 밝은 척하는 나와는 다른 친구였다.



그 당시 우리 고모는 생계를 위해 방과 후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는 그룹 과외를 시작하셨다. 저렴하지만 꼼꼼하게 공부를 봐주는 고모의 수업에 형편이 어려운 동네 친구들이 함께했다. 나는 의무 참석이었고 'L'도 함께 하게 되었다. 나는 'L'이 우리 집에 드나드는 것이 싫었다. 반지하 거주 사실을 학교에 소문낼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L' 은 반지하 동지인 나를 친동생 챙기듯 챙겨주었다. 공부를 제대로 안 하는 것부터 수업준비물 심지어 도시락 편식까지... 나는 그런 'L'이 정말 싫었지만 혹시라도 나의 반지하 거주 사실을 말할까 봐 내색하지 않고 참았다.





소문


나의 걱정과 반대로 어느 날부터 인가 'L'의 반지하 거주 사실이 아이들의 화두에 올랐다. 비밀을 잘 숨기던 나와 반대로 'L'은 숨김없는 착한 성격에 몇몇 친한 아이들과 자기 집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것 같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L'은 왕따가 되었다.



그 당시엔 우리 동네엔 아파트보다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들이 많았다. 이런 주택은 보통 주인들이 1층, 2층에 살았고, 반지하에 세입자들이 살았다. 그러므로 대문으로 출입하는 것은 세입자나 주인이나 같았다. 나와 'L'은 단독주택 반지하에 살았고 나는 그것을 들키지 않았으나 'L'은 들킨 것이다.



'L'과 반지하에 대한 소문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반 아이들은 사실 확인을 위해 정찰대를 구성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 정찰대에 자원했다. 학교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 'L'의 집 앞으로 갔다. 이 사실을 눈치챈 'L'도 우릴 막았다.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은 초록색 대문 앞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처럼 서로 대치한 채로 몇 시간을 있었다. 비열한 왕따의 현장에서 나는 오로지 나의 진실이 탄로 날까 두려웠다.



괴롭힘에 지쳐버린 'L'이 '나만 반지하에 사는 거 아니야! 미문이도 반지하 살아!'라고 말할까 초조하고 불안했다. 아마 내가 그 상황에 닥쳤다면, 정찰대가 우리 집 앞에 왔다면 나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L'은 그러지 않았다. 그 아이는 비겁한 친구들의 행동에도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며 약한 모습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말하지 않았다.



어느 멋진 성장 영화처럼 우리의 우정이 깊어지거나 내가 참회하며 자아가 성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는 'L'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과외 공부 시간에도 갖가지 핑계를 대며 빠졌고, 등굣길, 하굣길, 쉬는 시간, 수업 시간 그 어떤 시간에도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초등학교 시절은 끝났다.





7년 뒤 'L' 에게 걸려온 전화


대학교 1학년이 되었다. 전날 선배들과 술을 죽도록 마신 나는 수업도 안 가고 퍼질러 자고 있었다. 어릴 때와 달라진 거라곤 살던 동네만 바뀐 것이고 여전히 철없고, 여전히 반지하였다. 비몽사몽 속에 전화기 건너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미문이니?"


단번에 ‘L’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로가 서로임을 확인하자마자 그 아인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아직도 자?”

“어…”

“으그… 곧 있으면 점심인데 아직도 자냐!”


'L'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다고 했다. 자신은 공부와 맞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L'은 우리 고모와 우리 집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내 학교생활과 건강에 대해 물어주었다. 내가 무언가 물을 타이밍이 되었지만 나는 오후 수업을 가야 한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곧 우리의 통화는 어색해지다가 이후 만남이나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끝났다. 그 뒤로 'L'에게 전화가 오진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했어도 되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시 나란 놈은 참 한심했다.





'L'에게 했어야 하는 말들


그때 나는 'L' 에게 꼭 말했어야 했다. 초등학교 때 너보다 훨씬 가난했던 건 바로 나였다고. 마음이 너무너무 가난해서 너처럼 착한 친구를 감싸주지 않고 오히려 괴롭히는 선택을 했다는 것. 왕따를 당해도 싼 건 바로 나였으며 너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못된 행동들에도 잘 대처했다고. 어려운 가정환경을 불평하기는커녕 집안을 위해 취업으로 바로 뛰어든 것은 정말 책임감 있고 훌륭한 선택이라는 것. 그게 진짜 어른스러운 행동이라는 것. 그러니 힘내고 멋지게 잘 살아가라고... 시간 된다면 만나서 밥이라도 먹자고 언제 시간이 되냐고... 말했어야 했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멍청하고 바보 같이 굴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집이 가난한 건 괜찮지만, 마음은 절대 가난해선 안 된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네가 나에게 대했던 것처럼 나도 너에게 그렇게 대해주지 못해서 정말 후회된다고...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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