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할 때

by 진지우기

경제적 가난이 싫은 것은 나에 대한 학대를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마음 통장이 마이너스 일 때 내면은 하루 종일 혼돈으로 가득하다. 타인에 대한 비교와 질투,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불안함에 정신을 못 차린다. 그나마 생각해내는 것이라고는 '인생 한 방이야. 로또만 되면 되지.'와 같은 망상뿐이다. 자신감과 건방짐을 구별하지 못해 예의 없이 굴기 일수다. 하루가 뜻대로 안 풀리는 날엔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많이 학대했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누군가를 때려본 적도 없지만 내 마음에겐 능숙한 채찍을 하는 날들을 보냈다. 내가 아니라 내 가난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합리화하며 모든 분노를 내 마음에게 쏟아내었다.


그렇게 고통받던 마음은 결국 떠났다. 그걸 깨닫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경제적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독기 서린 말들만 뱉어내던 중 이상함을 느꼈다. 원래대로라면 저쪽 편에서 마음의 신음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고통을 느낌으로서 그나마 위안을 얻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채찍을 맞던 죄인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세게 때려도 침묵만이 흘렀다. 그 침묵은 이제 정말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그나마 갖고 있던 마음마저 떠나버린 것이다. 외로웠고 두려웠다. 그렇게 잃어버린 마음의 빈자리는 질투나 불안 분노이라는 감정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곧 내 마음은 내가 사는 반 지하보다 더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그것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겪을 수 있는 가난이다. 부자의 경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의 소리는 꺼버리고 갖은 수단들로 버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자기 재산과 영혼의 가치를 동등하게 여기며 갑질을 서슴없이 하는 것. 모든 죄도 돈으로 씻어보려 하는 것.


가난한 자들은 어떨까? 자신의 무능력과 게으름에 대해 얻은 경제적 빈곤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정부나 부자들을 향한 무분별한 냉소와 비판으로 일관하는 것. 혹은 자기 비난과 혐오나 학대를 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타입이었다. 심해질 경우 가장 나쁜 선택을 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사는 법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선 월 천만 원 벌기 가장 쉬운 시대라 말한다. 자기 계발서에선 자신의 장점을 찾아 극대화시키고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삶의 부를 이루라고 조언한다. 모두 우리가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제적 가난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야기하고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강의와 책을 구매한다. 자신의 통장을 채우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의 통장에 대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과연 마음의 가난에 대해선 누가 돈을 지불할까?


마음이 떠났다는 것. 즉, 마음 통장이 비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채우려 한다. 이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학습된 '소비' 위주의 사고방식이다. 결핍을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소비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의 모든 것이 소비로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소비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마음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이성, 맛있는 음식, 여행지, 좋은 물건, 각종 취미 생활로 아무리 꽉꽉 채우며 산들 그것은 결국 즐거운 감정들을 수집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의 경우엔 책으로 마음을 채우려 했다. 마음의 빈자리를 지식이나 멋진 문장들로 채우면 될 줄 알았다. 채찍 대신 책을 들며 지적 허영에 취하니 기분은 좋았다. 뭔가 삶이 달라진 것 같은 마음에 즐거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마음을 채우려고 하는 이런 태도는 옳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이 쌓여 갈수록 공허함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의 빈자리를 감정을 채우기로 때우고 있던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즐거움 감정을 아무리 채워준다고 해도 마음의 통장은 채워질 수 없었다.


이걸 깨닫게 된 것은 동양 고전인 <대학>의 첫 번째 구절을 통해서였다. 교육의 목적은 ‘명명덕’. 자신의 안에 있는 덕을 밝히는 것. 이건 이미 내 안에 있는 훌륭한 그것을 밝히는 것. 잃어버렸던 보물섬을 발견하는 것. 꺼진 등불을 밝힌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채찍질했던 내 마음을 존중하고 더 빛나도록 도왔어야 했다는 것. 이미 가지고 있는 그 빛을 밝히는 것. 이것이 마음의 가난을 벗어나는 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는 경제적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채찍 대신 방법과 계획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마음에게 용서를 구하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감히 말해본다. 통장은 채워야 맛이고, 마음은 밝혀야 맛이라고...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에겐 싫은 소리 한마디도 못하면서 자신에겐 폭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면 당장 멈춰야 한다.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떠난다면 마음이 가난해질 것이고, 그 빈자리를 혼돈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면 결국 당신은 나처럼 사는 법을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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