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by 진지우기

서른이 넘어서도 내가 사는 반 지하를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없었다. 정확히 말해 욕망이 없다기보다는 이루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꾹꾹 숨겨왔다. 예술가의 삶을 산다는 자기 합리화에 취해있었고, 예술가를 그만두더라도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반 지하를 탈출하여 경제적 자립과 책임감을 갖는 것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다 불안이 나에게 소리친 것은 기타 연습 시간이었다. 군대 제대 후 취미로 시작한 기타를 몇 년간 쳐왔다. 만약 로또에 담청 된다면 나는 멋진 집이나 차 대신 나만의 음악 연습실을 꾸미고 갖고 싶었던 기타들을 모조리 사서 걸어놓고 하루 종일 기타만 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기타 치는 것을 좋아했고 한때는 늦깎이 뮤지션이 돼보려 했다가 학원 선생님의 만류로 아마추어로 지내기로 했다. (그때 뮤지션의 길로 들어섰다면 가난한 연극인 커리어에 뮤지션까지 붙어서 내 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좋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하던 기타 연습을 하려는데 갑자기 '불안'이 소리를 질러댔다.


‘이 나이 먹고 반 지하 방에서 기타나 치고 있냐! 도대체 뭘 하는 거냐! 뮤지션이 될 것도 아니고 취미이면서! 생활이 먼저고 그다음 취미다! 삶의 순서도 없고 뒤죽 박인 채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불안'은 그때까지 누르고 눌러왔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막힌 화산이 폭발하는 듯 어찌나 강하게 쏟아져 나와 너무 놀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계획을 내놔! 앞으로 어떻게 할지 대책을 말해봐!’


며칠 동안 불안한 내 감정이 쏟아내는 말들을 도망쳐 다녔다.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내 특기다. 참 많은 것들로부터 도망쳐 살았다. 학생 때는 공부라는 책임에서 도망쳤고, 연극을 하면서는 생계라는 책임에서 도망쳤다.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아들이라는 책임감, 결혼이라는 책임감, 미래에 대한 책임감들에서 도망쳐 다녔다.

'불안'은 이런 도피행각에 참다 참다 폭발해버린 것이다.


웬만한 도피 술을 다 익힌 나였지만 불안으로부터는 도망칠 길이 없었다. 내 안에 나와 꼭 붙어있는 놈을 어떻게 도망칠 수 있겠는가? 끈질기게 하루 종일 나에게 명확한 해결책을 요구했다. 불안은 내 마음을 다 점령했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전까지 그 무엇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말 무서운 녀석이었다.


내가 갑자스런 녀석의 등장에 놀란 것은 그동안 가난이나 반 지하 생활에 대해서 딱히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자금은 어찌어찌 갚아가고 있었고, 풍족하진 않지만 남에게 손 벌리고 살지 않았다. 도박이나 음주, 흡연도 하지 않고 나름 연극만 했고, 취미로 기타를 치는 게 전부인 나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이 넘게 내면에서 불안과 다투며 깨달았다. 나는 이기적이었다. 피해를 주지 않음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현재 내 나이를 봤을 때 자식으로서, 앞으로 만들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정신적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 진실로 사랑하며 결혼을 하려 하지도 않았고, 부모님에게 용돈은커녕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내 경제적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더 가난한 삶을 유지하는 최악의 수를 두며 고난도의 도피 기술로 살아왔던 것이다. 녀석의 생각에 동의했고 결국 '불안'과 동거를 시작했다.


서점으로 갔다. 자주 가던 예술/영화/연극 코너를 지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계발’ 코너를 갔다.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나쁜 짓도 아닌데 땀이 났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라는 몇 권의 책을 샀다. 고함을 지르던 불안은 내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제. 책을 보고 네 삶의 계획을 세워봐.’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한 지 3년 정도 흘렀다. 아직 반 지하에서 탈출하진 못했다. 하지만 책을 만나며 내 삶은 도망가기에서 연구하기로 바뀌었다.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알아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30년 넘게 살아온 반 지하 생활을 3년 만에 벗어나는 것이 욕심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더는 반 지하에 살 순 없다. 도망치는 삶으로 사는 것은 최악의 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책임지는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삶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아직도 나에게 소리치고 왜 이리 느리냐고 닦달하며 결과를 요구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대꾸도 안 하고 기타를 치거나 바로 도망쳤겠지만 요즘엔 책을 펼치며 이렇게 말한다.


‘잠깐만… 작업 중이야. 기다려봐. 곧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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