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매점으로 뛰어가거나, 엎어져 자거나, 창문으로 가는 것. 식욕과 수면욕을 물리치고 창문으로 가는 건 맞은편 여자 고등학교에 여학생들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나는 열렬한 '창문'파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 내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아침 등교버스와 쉬는 시간 창문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한놈이 기가 막힌 소식을 들고 왔다. “연극반에 들어가면 여자가 있데!”공식적인 학교 동아리 활동 중에 유일하게 연극반만 여자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극을 하려면 여자 배역이 필요하고, 연극반 담임선생님의 열정으로 여자 고등학교에서 여배우를 데려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디션을 봐야 한다는 장벽이 있었다.
당시 주목받거나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발표가 있는 날은 학교도 빼먹었을 정도로 극 소심했던 나에게 그 오디션은 17살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호르몬의 힘은 강력했다.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강렬한 집념은 극소 심한 고등학생을 연극반 오디션에 도전하게 만들었고, 몇 번의 구토와 불면의 밤을 보내며 합격을 이뤄냈다. 암울했던 남고 생활에 드디어 꽃이 피는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들어간 연극반엔 여자가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여장을 한 남자’ 선배들만 있었다. 연극반에선 의상실에 도둑이 들어갔다가 마네킹들에게 혼난다는 내용의 연극을 준비하고 었는데 마네킹 역할의 여고 배우들이 전국 모의고사 준비 때문에 학교 측으로부터 활동을 금지당했고, 어쩔 수 없이 남학생들이 여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연습 첫날 선배들과 선생님은 거한 환영식을 해주었다. 다음 날 말하려고 했지만 친구 놈이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그다음 날은 여장이 죽기보다 싫었던 선배들이 대거 탈퇴하여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눈치만 보던 나는 ‘여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연습실 구석에서 치마를 입으며 속으로 다짐했다.‘오늘만 하고 당장 그만둬야지…
그렇게 몇 개월간 그만 두지 못했던 나에게 가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여자’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분장실에서 대걸레로 만든 가발과 엄마의 치마를 입으며 다짐했다.‘이 공연만 하고 그만둬야지.’ 다짐과 다르게 나는 고등학교 내내 교과서보다는 대본을 들고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리고 나는 연극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반 지하와 연극은 첫 번째 공통점은 둘 다 지하에서 한다는 것이다. 운명의 신이 이끄는 길은 반 지하에 살았던 나를 더 깊은 지하 세계인 연극무대라는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연극에게 고마운 것이 있다면 그 당시 내가 반 지하 생활을 핑계 삼아 비행청소년이 될 수 있었지만 부정적 에너지 대신 연극이라는 활동에 내 에너지를 쏟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이자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좋은 작품을 보고 감동할 수 있는 살아있는 감정들과 밝은 정신을 만들어주었다.
반 지하와 무대의 두 번째 공통점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생각과 노력으로 무대에 서는 일과 반 지하 생활을 탈출하기 위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도 모두 자신의 능력만을 요구한다. 그 외 아무것도 없다. 지하에 있으면 시간 구분이 어려워진다.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며 작업에 몰입했다. 그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한다면 고통이지만 그것을 수련의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자기 성장의 시간이다.
로버트 그린의 <마스터리의 법칙>에서 흔히 천재라고 불리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과거를 조사해본 결과 각자의 치열한 수련기간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하기 싫었던 작품을 해야 했고 그것을 시련이 아닌 수련으로 받아들였다. 모차르트도 자신의 천재성만을 이용하려던 아버지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빡빡한 연주회 일정 틈틈이 새로운 음악들을 배우며 연습했다.
내가 반 지하에 태어나게 된 것.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지하 극장에서 연극을 하게 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흙수저라는 시련이 아닌 수련의 과정을 거쳐 더 빛나는 존재가 되라는 신의 뜻이 아닐까?
물론 이런 신의 뜻을 그 당시엔 몰랐다. 이렇게 만든 부모님이나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던 나를 비난하곤 했다. 흙수저 보다 더 심한 지하 수저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에 자주 절망감에 빠져 스스로를 비난하고 나무랐다. 반성을 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됐지만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다. 스스로에 대해 비난한다는 것은 반성 조차 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자의 상징이라는 것을...
그러다 문득 반 지하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생계와 내 가치를 높이는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 변화가 필요하다는 증거. 수련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강해지고, 부지런해지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연극을 하지 않지만 무대에서 배운 것들은 반 지하 삶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 집중하여 오로지 나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지금의 상황을 시련이 아닌 수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