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압류를 당했다.

by 진지우기

월요일 오전. 이제 막 오픈하여 손님이 없는 한적한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은 내 삶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고 행복감을 주는 일이다. 작업실이 있다면 좋겠지만 반 지하를 벗어나지 않는 한 힘들 것이다. 여느 때처럼 결제를 하려 했는데 카드결제가 안되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해봤지만 분명 돈은 있었다. 나의 오전을 다 날려 알아보니 내 통장이 압류를 당한 것이었다.


통장을 압류한 것은 20년 전 고등학생 시절 한 서명 때문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연대 보증 제도이지만 그 당시 아버지가 서명하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서명으로 나는 아버지의 연대보증인이 되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아버지는 파산 신청을 했다. 그리곤 집을 나갔다. 채무자와 아버지의 역할을 동시에 그만둔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을 그만둔다는 것에 대해선 책임이나 보증은 따지지 않지만 경제적인 파산은 정말 무섭게도 그 책임을 끝까지 따라 묻는다.


독립생활을 시작하며 여러 반 지하를 옮겨 다녔고, 그때마다 '연대보증으로 인한 채무변제 요청'은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그중 크고 작은 몇 건은 갚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건이 있었을 무렵 10년 넘게 연락이 없던 아버지에게 문자가 왔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연말 감성이 잔뜩 묻어있던 내용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아들아. 네가 어떻게 생각하던 난 널 사랑한다.'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 패륜은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덤덤하게 그간의 채무 변제를 내가 다 했으며 남은 채무는 약 천만 원 정도 한 건이 남았으니 이번엔 도와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돈이 없다. 미안하다.'


참 신기했다. 어떻게 아버지란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책임은 회피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나의 아버지는 화학자 하나의 물질에서 여러 성분을 분리해내듯이 하나의 감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감정만을 추출하는 전문 기술자였다. 도박 중독이라는 자신의 감정에서 '욕망' 대신 '도전'을 뽑아내어 변명을 했다. 어머니에 대한 '폭력'에선 '사랑'이라는 감정을 뽑아내어 변명했다. 한 마디로 엄청난 궤변론자다.


그렇게 어이없는 문자를 주고받은 후, 한동안 잊고 있던 분노가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어딘가에 풀고 싶지 않았다.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소심한 복수를 한답시고 마지막 남은 천만 원가량의 채무를 변제하지 않고 계속 무시하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쓰는 아침 시간에 통장 압류가 된 것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로 마음은 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일을 가기 전 이 소중한 시간을 나쁜 감정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호흡을 통해 명상에 집중했다. 마음의 평화는 개뿔... 곧 거대한 분노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폐륜이라 부르던 말던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쏟아부은 뒤에 왜 아버지 도박빚을 내가 갚아야 하며,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자식에게 채무를 넘기고 뻔뻔하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낼 수 있냐고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냐고… 한동안 혼자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 멍하게 카페 구석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곧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시간을 분노와 망상에 사로잡혀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20대 때 그렇게 많은 분노와 원망을 아버지에게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반 지하 생활이었다. 더 이상 이런 방식의 감정처리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장 망상을 멈추고 아무 생각 없이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의 초안을 썼다.) 곧 폭풍이 잠잠해지고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곧 그동안 나 또한 책임감 없이 행동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숙제를 풀지 않고 계속 미루다 오늘의 결과를 맞이 하던 것이다. 쪽팔렸다. 서른이 넘어 문제를 해결하긴 커녕 카페 구석에서 아버지를 원망만 하고 앉아 성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사춘기적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니… 분노나 원망은 해결이 아니었다. 자기기만적인 고도의 회피 기술이다. 공부나 일을 하기 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잠깐 하는 게임 같은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해도 해결하는 행동이 아닌 회피하는 행동이다. 그동안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이 숙제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숙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확히 내 문제였다.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들며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알았지만 스스로 어리다고 생각했고 부모의 문제이니 부모끼리 해결하겠거니 했던 방관 시간들. 대학을 간 뒤로는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는 이기적 마음에 사로잡혀 경제적 상황이나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긴 커녕 독립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결국 이 모든 일의 결과는 내가 스스로 쌓아온 의사결정의 총합이었다. 그때그때 풀었어야 했던 문제들에 대해 풀지 않음으로 인해 결국 이지경에 왔으며 그 숙제들을 이제라도 풀어가라는 우주의 명령인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풀고 싶지 않아 도망치다 보면 자신의 숙제가 아니라 타인의 숙제라고 합리화해버린다. 고급 회피 술을 시전 하는 것이다. 이런 회피의 결론은 통장 압류와 반 지하 생활이라는 경제적 가난과 그로 인해 마음까지 가난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나처럼 도망치거나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숙제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우주의 명령에 응답할 때가 왔다. 우리 모두 풀고 싶지 않은 숙제를 가지고 있다. 부디 과거의 나처럼 숙제를 미루질 않길 바란다. 물론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보니 가끔 미루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자신의 숙제를 타인의 숙제라고 떠넘기는 것은 절대 해선 안 되는 회피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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