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선택'은 할수 있다.

by 진지우기


내가 가난과 반 지하 생활에 대해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가난'이라는 콘텐츠를 팔아 어떻게든 인기를 끌어보려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강한 애정결핍에서 나오는 행동일까?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순간도 모르겠다.


당장엔 답이 안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이 여정을 시작한 이유만이라도 밝혀본다. 왜냐하면 부족하지만 내 글을 구독해주시는 구독자님들에게 왜 시작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라는 사람은 심각한 완벽주의이자 인정 욕구가 매우 높다. 그래서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다. 주변인들에게 지적으로, 영적으로 충만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쉽게 말해 허세에 취해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적/영성적 측면에서 인정 욕구가 필요했던 것은 가난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물질에 대한 결핍과 욕망이 강력했지만 그걸 가지지 못해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지질한 내면을 발견한 뒤, 이것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내 생각과 행동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나처럼 반 지하와 가정 불화 같은 환경으로 인해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평생 읽지도 않던 자기 계발, 비즈니스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각종 강의와 자료들을 보며 성공한 사람들의 방법과 노하우를 공부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아직까진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잊을만하면 몰아치는 불안과 어차피 이렇게 해도 넌 안 될 거라는 자포자기적 마음에 시달리기도 하고 나보다 빠르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하루 종일 질투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기도 했다. 당당히 선언했으나 희망의 증거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흙수저는 어쩔 수 없어.', '나는 사업이나 돈 버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명필 이광사'와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조선 후기 명필가로 이름을 날린 이광사는 영조 때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 유배기간 동안 그는 고독과 후회 속에 살았다. 당시 이광사의 글은 비싸게 팔렸는데 그는 자신의 글을 팔아 값비싼 벼루와 술잔 등을 사서 모았다. 그리고 가을 되면 익은 박을 따서 자신의 글을 새겨 바다로 띄우며 "바다 동쪽에 이광사란 사람이 있음을 알아주면 족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풍족한 생활이었지만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고독함을 채워주진 못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산 정약용 또한 정치적 모함으로 유배를 당해 18년 동안 강진에서 생활했다. 그는 지금으로 따지면 청와대 2급 공무원 정도의 고위직에서 떨어져 시골 주막의 귀퉁이 방으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집 232권, 문집 260권을 집필했다. 한 개인의 힘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자신의 유배생활에 대한 두 명의 선택은 달랐고 우리는 이광사보다 정약용을 더 기억하게 되었다.


정약용과 이광사의 유배생활을 통해 나의 반 지하 생활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유배 생활을 의미 있는 활동으로 채우기는커녕 '유배자'라는 것을 들킬까 봐 그것을 감추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유배생활을 하는 데 있어 유배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지 '선택'만 하면 될 것을...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경제적 가난과 마음의 가난에 대해 스스로 분석하고, 고칠 부분은 고치고 다독일 부분은 다독여주며 진짜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더라도 무언가를 창조하며 의미를 만들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마음가짐만 있다면) 누구나 정약용처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이 '반 지하 생활'이 나만의 유배 생활이라면 누구나 자신 만의 유배 생활을 할 것이다. 누군가는 취업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대학 진학이나, 사업의 성공 등 각자 자신만의 유배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약용 같은 선택을 할지, 이광사와 같은 선택을 할지는 본인의 문제다.


아마 이광사도 자신의 선택이 옳지 않음 알 것이다. 그럼에도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그 참담한 마음을 회복할 의지가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후회와 원망을 품고 바다 위에 편지를 띄며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며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처럼 보였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정약용보다 이광사의 마음이 더 깊이 공감될 것 같다. 하지만 공감만으로 그의 선택이 옳다고 할 순 없다.


결국 나는 이광사보다 정약용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내 학식이 더 깊다면 정약용처럼 바로 책을 집필했겠지만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글의 소재로서 '가난'이라는 나의 치부를 선택했다. 이것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예전보다 한 발 나아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마음이 심란해도 우린 무언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본인의 문제다.


나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창조하는 쪽으로, 그 소재는 '가난'이라는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선택했다. 선택했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걸 깨닫는 것이 이 시기를 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만약 당신도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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