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다. 때가 많이 늦었다. 20년 전 개봉 당시 높은 흥행성적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때 10대인 나는 이 영화가 또래 애들이 보는 유치한 성장 드라마처럼 보였다. (나의 감성이 또래보다 성숙하다는 착각은 이때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30대가 된 지금에서야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는 '어른'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되는 것일까?
"딱 보니 내 아들뻘이네... 말 놔도 되지?"
처음 이사 온 날 주인집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부터 놨다. 통상적으로 어른의 대한 정의를 시간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다. 이들에게 어른이란 그저 '나이가 더 많다는 것' 정도다. 과거엔 '장유유서'를 앞세우며 어른 공경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여겼다. 왜 그랬을까? 과거엔 나이가 많다는 것은 건강을 잘 유지했으며, 후대에 유용한 지식과 노하우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며 건강은 의사들에게 넘어갔고, 지식은 전문가들에게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이제 시간적 의미의 '나이'는 쇠퇴를 의미한다.
시간적 개념으로 어른을 구분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고령화 사회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20대와 40대의 차이가 현재는 심해 보이지만 그들이 나이를 먹어 60대와 80대가 되면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을 갖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 어른 대접받긴 힘든 세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른'이라는 건 무엇일까? 시간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양적인 개념, 즉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학자나 연구자 등의 지식인들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적이고 심화된 지식을 가진 그들은 일종의 권력을 가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그런지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뜨겁다. 그렇다면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어른'이 되는 것일까? 그럼 나이가 아닌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어른일까? 이 세상의 영재들 모두 어른일까? 80대 평범한 노인이 30대 물리학 박사에게 '어른'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유바바'는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닌 마녀다. 그녀는 신들이 쉬었다 가는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왕이다. 계약을 통해 정해진 일을 시키고, 일하지 않는 자는 돼지로 만들어버리며 모든 이들을 엄격하게 다스린다. 이런 그녀의 힘과 행동양식은 '어른' 물리적 조건을 갖춘 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엄마이고, 계약을 통해 상대방의 이름을 빼앗아 영원한 노동착취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악덕 기업가다. 전제적 군주의 모습과 악덕 기업가의 모습을 가진 그녀에게 어른이라는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는 유바바와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마법의 힘으로 모든 물질과 생명을 통제하는 유바바와 달리 제니바는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짠 머리끈을 치히로에게 선물하며 마법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지혜에 대해 전한다. 손가락 하나만 튕기면 단번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음에도 그 힘이 가진 어두운 면을 이해하고 있는 제니바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른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어른스럽지 않은 인물은 유바바뿐만 아니다. 밖을 경험해보지도 않았음에도 위험하다는 생각만으로 안전한 집안에 머물며 엄마인 유바바에게 불편한 모든 것을 의지하는 '보우'. 부모에게 강하게 의지하며 모든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했던 주인공 '치히로'. 금을 주며 자신을 사랑해달라 말하는 '가오나시'.
이 인물들을 통해 어른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통제력'을 의미한다. 또 하쿠가 보여주는 '배려와 보호', 치히로가 여정을 거쳐가며 깨닫는 '책임감과 용기'다.
어른이라는 것은 나이나 지식의 양이 많고 적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란 힘과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보호해주는 사람이다. 역경을 만났을 때 책임감을 가지고 아주 미약하더라도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다 보고 생각에 잠긴다. 나는 어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