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입구엔 김밥집이 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사 왔을 때부터 있었다. 좁은 가게에 들어서면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참기름 병처럼 호리호리 한 아주머니가 있다. 김밥 몇 종류와 라면 한 개. 이 단출한 메뉴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는데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정기휴무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네 입구에서 아침을 밝혔다.
지나다닐 때마다 가게를 힐끗 보면 오래된 참기름병 같이 낡은 유리 창안에 아주머니 혼자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떤 때는 김밥 싸시느라 바쁜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손님이 없어 답답하신지 하염없이 밖을 보고 계시곤 했다. 그런 날엔 들어가 한 줄식 사곤 했다. 김밥이라면 신물 나도록 먹었던 터라 좋아하진 않지만 하루 종일 서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가게 안에 아주머니 말고 한 명이 더 보였다. 새로운 직원은 아주머니 뻘 돼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신입직원 답지 않게 아저씨는 고급스러운 중역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가게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시커먼 중역 의자에 떡하니 앉아 늘어진 자세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정작 사장인 아주머니는 앉지도 못하고 조리대 앞에 서서 큰 의자에 가려 반 밖에 안 보이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부인은 하루 종일 서서 힘들게 김밥 마는데... 남편이란 인간은 저렇게 앉아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니... 저 아줌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저러고 사는 건지...'
그렇게 그 가게에 대한 동정과 혐오가 익숙해질 때쯤 김밥이 먹고 싶어 가게로 들어갔다. 거만하게 앉아 있던 신입직원이 드디어 일어났다. 그리고 아저씨의 몸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절뚝거리는 다리, 마비된 듯 겨드랑이 바싹 붙여 접힌 팔, 전체의 절반은 굳어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얼굴.
신입직원은 흔들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조절하며 주문을 받기 위해 내 앞에 섰다. 동시에 접혀서 말을 듣지도 못하는 손으로 비닐봉지를 뜯어 펼치고 있었다. 나는 기본 김밥인 '우리 집 김밥'과 가장 비싼 유부 김밥 두 줄을 시켰다. 한 줄은 원래 내가 먹으려 했던 김밥이고 유부 김밥은 사죄하는 마음에 산 김밥이었다.
몸이 불편한 아저씨는 서있기 조차 힘든 몸으로 아내를 보조하며 주문과 포장 업무를 맡았다. 자신의 업무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뻐꾸기시계처럼 검고 큰 의자로 돌아가 내가 봤던 그 거만한 자세를 유지했다.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6일을 거르지 않고 장사해온 아주머니도 존경스럽지만 그런 아주머니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자 불편을 몸을 이끌고 나와 장사를 돕는 아저씨도 대단했다. 나는 몸도 멀쩡하고 나이도 젊은데 열심히 살기는커녕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집 흉이나 봤으니... 아... 참... 너란 녀석 정말 철없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그날 이후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면 절로 중얼거린다.
'오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