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이 없이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최우선의 가치로 놓고 산다. 눈을 뜨고 어딘가로 가고 어떤 일을 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혼자 느끼고 생각할 때 우리의 중심엔 그 모든 것들을 판단하는 어떤 기준점이 있다. 그건 가치다.
가치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정의, 사랑, 지구 평화 같은 게 가치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아침에 스트레칭하기'.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험담하지 않기', '길냥이들에게 츄르 주기', '뭔가 꾸준히 한 가지만 하기' 도 좋은 가치라 할 수 있다.
비틀스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사랑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알렸다. 청년 전태일은 노동자의 인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세상에 알렸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중요하게 알리고 있다.
정말 중요한 가치들은 립스틱 색보다 더 많다. 하지만 만약 한 가지 가치를 뽑아야 한다면? 미래를 살아갈 우리 자녀와 후손들을 위해 지금 우리가 범지구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뭘까? 내가 그 가치를 발견한 건 토요일 밤 보는 영화 데이였다. 우연히도 그 가치에 대해서 우연히 본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디즈니의 최신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악의 상징이자 파괴의 근원으로 묘사하던 드래곤을 과거와 달리 신성하며 신비로운 창조의 힘을 지닌 영적 존재로 묘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어린이들과 부모에게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 가치는 바로 '빈손을 내밀 용기' 다.
주인공 라야는 드래곤의 힘을 갖기 위한 국가 간의 이기와 배신을 경험하고 그들에게 복수와 회복을 위한 방법으로 절대적인 힘인 드래곤 '시수'를 깨운다. 라야는 친절과 믿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치를 믿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용의 보석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아버지가 추구했던 신뢰라는 가치는 순진한 시각이었음을 깨닫고 강력한 힘인 시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라야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수는 평화적인 방법들로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 라야의 입장에서 시수가 믿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가치은 너무나 순진하고 답답한 관점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시수를 통해 배우게 되고, 결국 라야는 자신의 원수인 나마리에게 용의 보석을 넘기고 희생함으로써 오래된 왕국 간의 분열을 해결하는 성공적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한 때 어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세계를 안전하게 지켜낼 '힘'과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범지구적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고, 남극에 모기가 기승을 부리며 지구의 환경 문제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게다가 밖에선 화성 진출을 시도하고 있고, 안에선 메타버스라는 신세계를 만들며 급속도로 팽창하는 현재 상황에서 과연 '힘'이나 '지식'이 얼마나 가치 있을까?
미래에 우리 자녀들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상상하지도 못한 괴상한 이동수단을 타고, 외계인과 카톡을 하고, 인공지능 친구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머리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갈 자녀세대들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더 똑똑해져라', '더 부자가 돼라', '더 많이 일해라' 일까? 낯설고 두려운 어떤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무기가 아닌 빈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아주 중요한 한 마디는 붙여 줘야겠지.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돈을 빌려주거나 함부로 보증 서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