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리기

by 전무열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애기 곰은 너무 귀여워~ 으쓱으쓱 잘한다~


그렇다. 나는 뚱뚱했다. 곰 세 마리 동요 속의 아빠 곰처럼 나는 뚱뚱했다. 자녀들의 어린 시절 사진첩을 꺼내어 보기 전에는 뚱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이를 안고 밝게 웃으며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뚱뚱했다. 항상 배불리 먹고, 뱃속에 음식물을 가득 넣은 채로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며 점점 둔해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내 또래 아빠들도 대부분 비슷한 모습이니까. 괜찮았다.


어느 날 마라톤을 즐기는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보며 막연하게 나도 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학창 시절 100m 달리기가 제법 빨랐던 기억이 남아 있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달리기에 관련된 내용들을 검색하고 여러 달리기 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이미 마음은 마라톤 풀 코스를 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운동장으로 나아가려던 마음이 무엇 때문인지 며칠을 망설이게 되었다. 매일 달리기 커뮤니티의 글을 읽으며 열심히 달리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기록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멀쩡한 운동화를 놔두고 가성비가 좋다는 러닝화를 검색하고 러닝 용품도 검색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나의 달리기는 머릿속으로 먼저 진행되고 있었다.


2020년 3월 6일 퇴근 후. 정확히는 오후 7시. 집 앞 운동장에서 나의 진짜 달리기가 시작된 순간이다. 다소 쌀쌀했던 날씨였지만,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마라톤 선수가 되어있었기에 당당히 운동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뛰었다. 하지만 내가 잘 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처참했다. 마라톤 유튜버처럼 사뿐사뿐 멋진 폼으로 트랙을 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멋진 폼은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순진한 생각은 첫날 3km를 달리고 무너지게 되었다. 그렇다. 몸은 정직했다. 나는 이미 40살을 넘긴 나이였고, 지금까지 뛰어보지 않은 둔한 몸과 마음은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뿐 숨을 내쉬며 3km를 꾸역꾸역 달리고 러닝 어플을 종료하며, 저만치 운동장 한편에서 지켜보던 아내를 향해 애써 미소를 날렸다. 뭔가 큰일을 해냈다는 듯이. 그렇게 나의 첫 달리기는 다소 아쉬움을 남기고 끝이 났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머릿속이 아닌 실제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목표 거리를 완주한 내가 기특했다.


그 날 이후 매일 스스로 정한 거리를 달리며 꾸준히 달리기 시작했다. 뛰는 거리도 3km, 5km, 그리고 드디어 초보 딱지를 떼는 기준인 10km 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에 익숙해지며 자연스럽게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체중이 줄고 숨어있던 라인이 드러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날씬하고 보기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살이 빠지고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예전에는 관심이 없던 옷매무새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고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다.


러닝 어플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달리기를 시작하면 얼마 안가 금세 숨이 차오른다. 숨이 차는 것을 참고 호흡을 일정하게 하며 얼마를 달리면 처음보다 몸과 호흡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오롯이 내 심장박동 소리와 호흡에 집중하며 목표한 거리를 달린다. 출발하고 얼마 동안은 호흡도 불안정하고 여러 가지 잡생각이 들지만 이내 호흡이 정돈되고 차분해지며 마음도 생각도 정돈된다. 그리고는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나는 아직 초보 러너이지만 언젠가 42km의 풀 코스를 달리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지속된 연습으로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 몸은 정직하다. 오로지 연습을 통해서만 단련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달린다.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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