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좋고 안 하면 더 좋고

by 전무열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견적요청을 확인하고는 고객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승합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살짝 들떠있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확인해 본 바로는 기계부품을 제조하는 공장인 듯 보였다. 정문에서 간단한 출입절차를 마치고 담당자와 함께 공장 출입문에 다다랐을 때 눈 앞에 보이는 광경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공단 밀집지역에 위치한 기계부품 제조업체인 공장의 바닥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찌든 기름이 신발 밑창에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고 기계 진동으로 인해 오랫동안 쌓인 먼지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흩날리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현장의 기계들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원격에서 생산 관련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 확인하기 위해 기계장치마다 네트워크 라인을 설치하려 한다는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견적서 작성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기록하며 공장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은 공장의 모습 때문인지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하는 엔지니어인 나는, 현장을 방문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견적서를 제출하는 업무를 한다. 고객이 원하는 네트워크 환경을 구성하는 일이 우리 회사의 주요 업무이다. 오늘 방문했던 고객사로 제출할 견적서를 작성하면서 좋지 않은 작업 환경 탓에 걱정이 되었다. 고민 끝에 작성한 견적서를 이메일로 보내곤 혼잣말을 뱉었다.

“하면 좋고 안 하면 더 좋고….”

견적서를 보내면서도 그 일을 하기 싫다는 생각에 다른 업체가 선정되면 좋겠다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가능한 많은 발주를 받아 수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일반적인 회사의 목표 이건만 이번 일은 그다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쾌적하지 않은 현장은 작업이 쉽지 않을 듯했고 더구나 주변에 식사할 곳 조차 마땅치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래 가사가 있던가? 고객은 우리 회사를 시공업체로 선정했고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며칠에 걸친 네트워크 설치 작업을 마치고 고객 담당자에게 내용을 보고하였다. 최종 테스트 결과와 설치 내용을 확인하며 만족해하는 담당자의 모습에 작업 전 부정적이었던 마음을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일의 좋고 나쁨을 가리고 깨끗하고 편한 일을 선호하며 주어진 일에 감사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머릿속을 채우며 부끄러워졌다.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 못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지 못한 우리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담당자를 보며 죄송하기까지 했다.


그 일 이후, 잠시 잊고 지냈던 “초심(初心)”을 꺼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고, 크고 작음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일 하는 것 자체가 감사했던 시절. 사업을 시작했던 초기의 마음가짐이 떠올랐다. 지금 나에게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는 한 건가?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며 무심결에 뱉었던 부끄러운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다. “하면 좋고 안 하면 더 좋고”가 아니라 주어진 일의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겠노라고.


언젠가 또다시 마음이 무뎌지며 감사가 줄어드는 날이 오면 이 글을 꺼내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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