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길작은미술관 - 남명초등학교 전시회 12월 30일까지
서울이나 광역 단위 대도시가 아니고선 제대로 된 예술관은 정치인들과 행정의 입장에서는 사치와도 같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예술관에는 각종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관, 예술회관 등이 있는데 이러한 공간에는 세계적으로 값비싼 예술품을 들이거나 빌려야 되기 때문에 보안부터 이동, 관리, 기온, 습도, 동선 등을 갖추기 위한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나마 덜 유명하거나 지역 작가들의 예술품들을 선보일 때는 비교적 적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관람을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각종 시설과 여유 공간은 고사하고 넓은 부지를 확보하는 것부터, 건물을 짓는 것부터 막막하다.
요즘은 카페나 식당, 서점, 도서관, 병원 등 생활 시설에서도 작품을 전시하거나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문화 중 하나가 길거리 공연 즉 버스킹인데, 행정에서 예산을 들여 실시하는 휘발성 버스킹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그래서 작은 지역일수록 기존의 공간을 활용한 예술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시골일수록 찾는 사람이 적은 건 물리적인 접근성, 역사적, 문화적 흐름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주 남해시대 B1면에 바래길작은미술관에 대한 안내 기사를 보도했다.
바래길작은미술관은 원래 평산보건지소 건물이었기 때문에 사용 용도가 완전히 달라 미술관으로서 기능은 낙제점에 가깝다고 평가하지만, 보건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전환시켜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돌려줬다는 점은 기능의 부족함도 상쇄시켜준다.
바래길작은미술관의 올해 마지막 전시는 같은 면에 위치한 남명초등학교 학생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굉장히 모험적인 시도이자 훌륭한 시도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였다. 특히 남해군 행정에서 관리하는 바래길작은미술관이 지역의 작은 학교에게 공간을 장기간 내어준다는 게 신기했다. 보통 행정과 학교는 잘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모험적인 시도이냐? 공공미술관에서 전시 작품과 작가의 이름값은 방문객을 이끌 수 있는 요소이자 사실상 전시회의 전부라고 할 만큼 의미가 큰데, 무명이자 아마추어 작가도 아닌 학생들의 작품을 전면에 내걸었다는 건 파격적인 시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쯤은 지역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지역 미술관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 학생들의 작품이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이냐? 그런 작품들도 있지만, 그 시절에만 드러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을 보면 학생들이 쓴 일기나 그림에서 피식하거나 가끔 감탄하지 않는가? 내게 영감을 주고 집중하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작품은 예술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작품은 그 학교의 교실이나 복도, 교정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데 어른들이 학교에 방문할 일이 거의 없지 않은가?
대학생 시절, 예술철학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이해 못하고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부터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의의는 무엇인가?”, “예술의 기준과 경계는 무엇인가?” 등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행위와 표현을 허용해온 인류사에서 예술은 내게 어떤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남명초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보고 거의 10년 만에 하나의 물음에 답을 내렸다.
예술의 시작과 끝은 인간이 가진 순수함의 표현이라고.
※ 바래길작은미술관 ‘남명초등학교 - 아이들이 글로 만든 놀이터 전시회’ 관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남해시대 기사를 참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