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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 -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나눔의 철학

2025년 3월 8일 스페이스미조 독립영화 상영회

by 전병권

영화 <어른 김장하>는 단순한 인물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는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어떻게 실천하며, 침묵 속에서 사회를 바꿔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김장하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터뷰를 거부했고, 언론의 관심을 피해 다녔다. 하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등록금이 부족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흔쾌히 내줬다.

“이번에 얼마 나왔어?”

김장하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건넸다. 마치 당연한 일처럼. 그 돈이 아니었으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학생들에게 그는 보이지 않는 후원자였다. 나눔을 할 때조차 상대방이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태도에서 김장하 선생님의 깊은 인품이 느껴졌다.

학생이나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 찾아와 후원을 요청하면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내치지 않았다. 그가 건넨 돈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희망이 됐다.

그가 평생 기부한 금액은 수백억 원이지만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다. 장학생이 몇 명인지,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 기부와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침묵했다. 자신의 선행이 결국 자기 자랑이 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장하 선생님은 학교를 설립해서 아무 조건 없이 국가에 헌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진주 명신고등학교 설립자이자, 8년간 이사장으로 지낸 김장하 선생님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했다. 학교 운영자들에게 “학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말라”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교육이 돈이 아니라 가치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립학교를 지어놓고도 국가에 기증하면서, 그는 교육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임을 보여줬다.

그가 명신고등학교를 정부에 기증하기 전, 이사장으로서 세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친인척을 채용하지 않는다. 돈을 받고 채용하지 않는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학교의 신뢰와 투명성을 지키기 위한 소신이었다. 대신 교사들에게는 "어떤 교사가 되어라"가 아닌 교사가 가진 교육관을 토대로 마음껏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날, 한 정치인이 김장하 이사장에게 교사 채용을 청탁했다. 하지만 그는 즉시 해당 지원자의 합격을 취소시켰다.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일로 인해 교육부의 감사가 진행됐지만 김장하 선생님은 당당했다. 왜냐하면 그는 학교를 운영하면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학교를 정부에 기부한 것도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처음 학교를 세울 때부터 그는 “이 학교는 내 것이 아니다. 결국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교육의 공공성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철학이었다.

형평운동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김장하 선생님은 형평운동을 비롯해 장애인, 여성, 예술문화단체, 인권운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단순한 시혜적 기부를 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사회 변화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사회적 불평등을 누구보다 아프게 바라봤고, 목소리를 냈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현실을 슬퍼했다.

“누가 인간을 차별할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을 차별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 너무 슬프다.”
이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재산을 사회적 평등을 위해 사용했다.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흩뿌리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가 남긴 철학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돈과 똥의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돈과 똥은 같아. 많을수록, 모여 있을수록 악취가 심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된다.” 그의 말처럼 거름은 꽃과 나무를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

김장하 선생님은 평생 지역신문과 지역사회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지역언론이 가져야 할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보이지 않는 곳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사라지는 가치들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의 개입을 거부하며, 진정한 권력 감시를 수행해야 한다.

김장하 선생님은 후원했던 단체가 문을 닫을 때마다 “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제대로 지켜주고 있는가? 지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남겨진 질문들

현대 사회에서 김장하 선생님의 삶은 더욱 큰 울림을 준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그의 나눔 철학은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가진 것'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진정한 부는 얼마나 많이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게 나누는가에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침묵하는 나눔’이다. SNS와 미디어를 통해 선행이 즉각적으로 노출되고 때로는 과시의 도구가 되는 현실 속에서 김장하 선생님의 익명성에 대한 고집은 진정한 나눔의 본질을 일깨운다. 도움을 주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지, 그로 인한 명예나 인정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의 교육철학 또한 현재 입시 중심, 경쟁 중심의 한국 교육 현실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교육의 공공성과 평등함, 그리고 교육이 갖는 사회 변혁의 힘에 대한 그의 믿음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김장하 선생님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분노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실천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개인의 작은 실천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다.

<어른 김장하>는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한 침묵 속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회와 나눌 것인가? 그리고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김장하 선생님의 삶은 이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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