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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의 감옥: 진실이 외면받는 시대

분열된 대중과 그 이면의 수혜자들

by 전병권

우리는 지금 진실이 통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실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누가 진실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더 감정을 흔드느냐가 여론을 좌우한다.


진실은 복잡하다. 맥락을 요구하고,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이 받아들이기 위한 진입장벽이 높다. 반면, "지구 온난화는 자연적 주기일 뿐"이라는 단순한 부정은 이해하기 쉽고, 당장의 불편한 변화를 거부하고 싶은 심리에 부합한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생각을 회피한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복잡한 사고 대신 직관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를 '인지적 절약'이라 부른다. 단순하고 감정적인 정보는 이렇게 생각하기를 꺼리는 뇌에 바로 들어맞는다. 반면, 진실은 사고를 요구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외면당한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거짓이, 복잡하고 깊이 있는 진실을 이기는 구조는 이미 인간의 뇌 속에서 예고된 일이었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탈진실'(post-truth)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브렉시트 캠페인에서 "EU에 매주 3억 5천만 파운드를 보내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졌을 때도, 이미 형성된 감정과 프레임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조차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당장의 승자독식이다.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제기된 "선거 사기" 주장은 수십 건의 법적 판단에서 기각되었지만, 여전히 다수의 지지자들이 이를 신봉한다. 진실보다 그들이 믿고 싶은 서사가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자극에 끌린다. 복잡한 진실을 설명하는 대신, 몇 마디 자극적인 문장이 감정을 흔든다. 그렇게 공공의 적이 만들어지고, 분노는 하나로 모아진다.


한국 정치에서도 복잡한 외교나 경제 정책은 종종 "친일"이나 "종북"이라는 프레임으로 단순화된다. 이처럼 프레임은 감정을 자극하는 데 능하다. 누군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대중의 분노를 집중시키는 방식은 아주 효과적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사람들은 분노에 사로잡히고, 냉정함을 잃는다. 그렇게 갈라치기가 시작되고, 사회는 선택지 두 개로 나뉜다. 분노하거나, 편을 들거나. 물론 예외는 있다. 무관심한 사람들. 그러나 이들조차 프레임의 외곽에 머물며 영향권 밖에 있지는 않다.


결국 진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진실이 바로잡히지 못한 사회는 점점 더 왜곡된다. 거짓이 사실처럼 자리 잡고, 그 위에 세워진 논리와 감정은 사람들을 더 깊은 오해와 갈등 속으로 몰아넣는다. 진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사회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때부터는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구조적인 붕괴가 시작된다.



프레임의 수혜자들: 분열에서 이익을 얻는 세력


이러한 분열과 갈등 구도에서 실제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정치인들과 정당은 복잡한 정책 논의 대신 감정적 분노와 적대감을 동원해 지지기반을 결집시킨다. 자신들의 실정이나 무능함에 대한 책임을 "적"에게 돌리며 비판을 회피할 수 있다. 진영 논리가 강화될수록 지지자들의 충성도와 투표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분열은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한국의 보수-진보 갈등, 미국의 공화-민주당 대립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단순화하는 대표적 사례다.


미디어와 소셜 플랫폼은 분노와 갈등이 클릭, 공유, 댓글을 증가시켜 광고 수익을 높인다는 사실을 잘 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의 알고리즘은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킨다. 뉴스 미디어들 역시 경쟁 속에서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내용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자 한다. "분노는 클릭을 낳고, 클릭은 수익을 낳는다"는 단순한 방정식이 미디어 생태계를 지배한다.


특정 기업과 이익 집단은 공공의 관심을 중요한 이슈(환경 문제, 노동권, 경제적 불평등 등)에서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 사회가 분열되어 있을 때 집단적 저항이나 규제에 대한 요구가 약화된다. 예를 들어, 대형 석유 기업들은 수십 년간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를 흐리고 의심을 심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이는 규제를 지연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전략이었다.


극단주의 집단과 음모론자는 불안과 불신이 높은 사회에서 더 쉽게 추종자를 모은다. 기존 미디어와 제도권에 대한 불신을 이용해 자신들의 급진적 아젠다를 정당화한다.


오늘날의 여론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냉철한 분석보다 뜨거운 분노가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고, 더 많은 주목을 끈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의 노력은 때로 무력해진다. 정제된 정보보다 조작된 이미지, 날카로운 팩트보다 자극적인 루머가 더 빨리 퍼진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고, 이는 '확증 편향'을 심화시킨다.



프레임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행동하는 진실의 힘


분노와 단순함이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포기는 답이 아니다. 진실은 느리지만 결국 승리한다. 다만 그 승리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


첫째, 메타인지를 강화하라. 자신이 특정 프레임에 갇혀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점검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분노하는가?", "이 감정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반대 입장에도 타당한 점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 우리가 소비하는 정보의 출처와 의도를 항상 경계하고, 자신의 확증 편향을 인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복잡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우리는 '회색 지대'에 머무를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한 해답이 없더라도,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기보다 그 복잡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적 겸손함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셋째, 진실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라. 진실이 복잡하다고 해서 지루할 필요는 없다. 사실과 논리에 기반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화가 필요하다. 데이터만 나열하기보다, 그 데이터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로 진실을 전달하라.


넷째, 디지털 리터러시를 확산하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은 이제 생존 기술이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비판적 사고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원주민 세대들이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과 조작된 정보를 식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진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팩트체크 기관, 독립 언론, 진실을 위해 싸우는 시민사회 단체들을 지지하고 후원해야 한다. 사회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프레임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진실을 위한 투쟁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결국 감정의 노예, 프레임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보에 기반한 시민의 판단력에 의존한다. 진실이 패배하면,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당신의 분노를 자극하고, 당신을 프레임 속에 가두려 한다. 그들의 게임을 알아차리고, 빠져나올 것인가? 아니면 진실의 빛으로 프레임의 그림자를 걷어낼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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