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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형준 Oct 09. 2021

데이터는 알수록 순해진다

모를 때는 무섭다.

데이터는 알수록 순해진다. 모를 때는 무섭다. 이 원리는 먼 옛날일수록 강한 파급력을 가지는 금기, 즉 터부(Taboo)의 위상만 봐도 알 수 있다. 터부의 특징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하지 마라' 다. 이건 왜 하면 안 된다는 설명이 없는 게 주요한 특징이자, 터부가 보유한 데이터의 성질을 파악하게 해주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 근거가 불분명한 막무가내식의 금기는 마치 자석에 바늘 달라붙듯 근거 없는 소문들을 끌어당기고 수집한다. 관련 없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들도 파생된다. 그렇게 더욱더 거대한 괴물로 성장한다. 결과적으로 이 데이터팩은 점점 무서운 성질을 띄는, 건드릴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괴물로 완성된다. 왜냐하면 이유와 근거가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아 막연한 두려움만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알수록 순해진다.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끊임없이 '왜?' 질문을 하듯, 데이터의 인내심을 끝까지 테스트해야 한다. 성가신 질문에 짜증을 낼 법도 하지만 데이터는 이렇게 다루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겉보기와는 다른 속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예로 한약재인 '당귀(Angelica sinensis)'를 들어보자. 당귀는 한의과대학 교수들도 벌벌 떨게 만들 정도의 '터부' 패시브 스킬을 가지고 있다. 저명한 교수마저도 당황하는 이 '터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두려워만 할 건 아니다. 데이터를 끝까지 까 보지 않았던 것이다. 


당귀가 터부시 된 것은 여성 호르몬 효과를 낸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연구자, 임상가들 사이에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재료다. 아직 상자 안의 내용물 분석이 끝나지 않았다. 위약(placebo)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RCT)에서 당귀는 여성 호르몬과 같은(estrogen-like) 작용을 보이지도 않았다. 반면, 폐경기 여성에 대한 치료 효과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 인간은 오히려 잘 알 때보다 더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금기의 본질이 그렇다. 어디서 공격이 날아들지 모르는 공포가 가장 심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한약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이야기해보자. 금기와는 달리 어느 정도 '환상'급으로 자리매김한 개념을 하나 소개하자면 바로 '쌍향작용'이다. 마치 불과 물 속성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희귀 아이템 같지 않은가? 이 개념도 뜯어보면 별 건 아니다. 단지 용량, 조건 그리고 대상에 따라 반대로 작용하는 결과들이 나왔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또는 익모초(Leonurus japonicus)처럼 활성 성분 중 알칼로이드(Alkaloid) 성분들은 자궁근 수축을 유도하고, 플라보노이드(Flavonoids) 성분들은 자궁근 수축을 억제하는 현상과도 같다. 이러면 익모초 자체가 자궁 수축을 유도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내용물을 깐깐하게 보지 않고 겉포장만 보면 마치 한 번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양날검처럼 보이게 되는 이 개념도 그렇듯, 그래서 모든 것은 까 보아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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