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습기를 옹골차게 품고 있는 장마 시기인 탓일까, 요즘 부쩍 온 몸이 가라 앉고 마음도 슬픔을 가득 품고 있다. 운전하다가도, 혼자 걷다가도 눈물이 불쑥 불쑥 차오르고 소리 없이 보슬비같은 눈물만 흘러 보낼 때도, 장맛비처럼 펑펑 쏟아지도록 엉엉 울면서 마음의 정화를 할 때도 있다.
내 마음 속에 지금 너무 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은 네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가족일 수도, 가족이었을 수도, 가족일 뻔 했을 수도, 가족이 아닐 수도, 가족이 될 수 없을 수도, 가족이 전혀 아닐 수도 있어서. 그래서 지극한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가진 이들이다.
얼마전, 나의 이 미칠 것 같은 소외감과 공허함. 그리고 상실감 때문에 읽은 글귀, 한 줄이 나의 메마른 마음에 심폐소생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실존적 소외' - 나와 타자 사이에 좁힐 수 없는 존재적 격차라고 이해하면 편할까. 우리는 타자와 하나되고 싶고 하나될 수 있을 거라는 허구적 상상 때문에 때론 지나치게 의존 혹은 의지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당신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면 그건 아마 당신이 꽤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의존과 의지를 나약하게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젖은 도로 위 휘청휘청, 마음도 휘청휘청 거리는 퇴근 길에서 왼쪽 다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운전하며 울었다. 아니.... 내가 너라면, 내가 당신이라면, 나를 정말 보고 싶을텐데. 어째서. 어째서 나를 이렇게도 좌절하게 만드는 건지. 나를 이토록 슬픔에 가득차게 만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만큼 원망이 쌓여가고 상실감을 느낀다. 존재 A는, 이제 다시는 이 생에서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먼저 소풍을 떠났고 그래서 마음에 담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B 그리고 C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잘한 일이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며 나의 공허함을 사랑과 따뜻함으로 가득 가득 채워주었던 존재이다. 하지만 지금 그만큼 고통과 아픔을 주고 있고 나는 여전히 이 사실만큼은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D는, D는.... D는...... 아직 미치지 (及) 않았기 때문에 나를 찾지 않고 있으며, 나에게 미쳐 있을 만큼 (狂) 비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기에 내가 D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D의 거리감만큼은, D의 무신경만큼은, 내가 놓인 처지에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치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B,C 그리고 D는 아직 나를 보고 싶을만큼 마음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황을 나의 편의대로 해석하는 확증편향을 발휘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요즘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방식대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품어주려고 애를 쓸 수 밖에 없다.
그것만이 내가 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미칠 수 있을 방법이라고 결론을 지어본다.
지독히도 혼자인 아픔이 자가 치유하듯 사그러들면 나를 찾아줄까.
그저 적당하기 때문이다.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제대로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