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흥분과 무례함으로 무장한 A 이야기
며칠 전의 이야기를 지금 돌아보며 글을 쓸만큼 나는 감정이 가라 앉은 상태이다. 그 날은 나를 충분히 위로하기 위해 예쁜 꽃다발도 하나 사고, 와인도 한 잔 했다. 충분히 좋은 경험에 대한 위안이라 삼으며.
흥분한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다는 경험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두번쯤 해볼 수 있다.
그 주체가 내가될 때도. 상대로 인한 공격으로 도저히 대화가 힘들어질 때도 분명히 있다.
때로는 그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 내 정서의 안정 상태에 해가 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위협을 느끼게 되고 두려움이라는 정서까지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 학업까지 겹쳐 있는 경우라면 상담 현장에서 자주 말하고는 하는
상담자-내담자의 이중관계, 즉 상담 관계를 떠난 사회적 관계까지 엮여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경우는 사회생활과 학업을 같이 하고 있는 이중관계를 많은 사람들과 겪고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나는 국립대학교의 교직원이기도 하고, 상사를 모시는 부하 직원이기도 하고, 그 상사가 교수라서 누군가의 제자이기도 선배이기도, 후배이기도, 동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얽힌 관계.
특히 나이를 떠나 단지 입학 시기로 인해 선후배로 정해진 관계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 평소에도 전화를 자주하고 특이한 사례로 인해 신경을 더욱 쓰게 한 민원인 A가 있었다.
A의 유형은 살면서 어딘가에서는 또 마주칠 사람이고 자신의 억울함과 인정의 욕구가 강한 자격지심 많은 사람이라 규정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게 그런 권한이 주어진다면. 내 삶에서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사람의 유형을 구분 짓는 것쯤은 할 수 있으니.
A는 엄연하게는 나의 후배인데 나이는 적어도 10살 가까이 많은 중년 여성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본인에게는 꽤 엄격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우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할 수 있는 직업군인 것은 확실히 안다. 적어도 우리의 전공의 살려서 진로를 정해서 갈 것이라면 말이다.
사무실을 혼자 쓰는 나로서는 전화 응대 시간이 매끄럽지 못할 때가 많다. 손님이 갑자기 방문한다거나 내가 회의나 외출로 부재 중일 경우는 특히나. 그런 사간 때에 하필이면 A가 민원 전화를 15분 이내에 1분 간격으로 6번 정도를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는 게 나을 뻔 했나. 7번째 받았을 때 A의 목소리와 톤은 매우 격앙되어 있었고 흥분이 가라 앉지 않은 상태로 퍼부을 준비를 한 사람의 그것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피해를 받은 입장이라고 생각한 사람의 불안감을 그렇게 표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A는 명확한 진상과 상황에 대한 파악도 하기 이전에 자신의 입장 표출만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나의 의무에 맞게 행정적인 절차로 차분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본인의 입장을 퍼부어 대는 사람에게 더이상 설득이 힘들었다.
A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몇 시간 동안의 불안감으로 인한 불편감에 대해서는 사과를 명확히 했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겪은 불안감은 현실화가 되지 않았고 누군가의 불안감은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사과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싫든 좋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때로는 상대의 감정이 수그러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나의 감정을 내려 두고 상황 그 자체에만 몰두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의 흥분을 가라앉히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말은 하지 말기.
중첩되는 관계에 대한 그 사람의 협박에도 흔들리지 말기.
무엇보다 나의 감정은 그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그 사람이 나를 위협하고 협박하더라도 내가 그것에 흔들릴 이유는 없기 때문에.
정말이지 그런 무례한 사람이 나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흥분이 올라온 사람에게는 합리적인 설명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온전한 공감과 수용이 필요했을까.
나의 전문적 분야인 상담력을 활용해서 누그러 뜨려야 했을까. 나의 옷이 아닌 행정력을 무기로 삼아 명확한 선만 그으면 됐을까.
A는 전화를 끊기 전에도 다음 주에 사무실로 찾아간다는 협박을 덧붙였는데 나는 얼마든지 열린 감정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편한 시간에 오라고 응대하였다. 그것이 A를 어떤 형태로 자극한 것일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바로 그 날, 2시간 정도가 흐르지 않은 시간에 A가 사무실로 음료를 사들고 찾아왔다.
아마도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불쑥 찾아와 그 통제감을 획득함으로써 상쇄하려고 했을까. 그렇게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받아들였다. 다음 주에라도,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를 맞닥뜨리면 나는 결심한 게 있었다.
명확한 거리만 두면 되는 민원인이므로 어떤 감정도 부여하지 말 것.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나에게 하듯이 친절하게 대하기.
로 마음을 먹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A는 생각보다 빨리 사무실을 찾아왔고, 나의 눈을 피하며 이야기를 했고, 억울하고 기분이 나빴다, 불안했다라는 요지의 말을 늘어놓았다. 본인은 이런 찝찝한 감정으로 주말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털어버리고 싶었다는 요지로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A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받아들였다. 결국은 행정적인 절차와 상담가의 자세로 공감하고 수용했다고, 나름의 대처를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퇴근 후 집으로 돌아 오던 길에, 맛있는 연어 스테이크나 연어 구이가 먹고 싶어서 들린 마트에서 비싼 연어는 사지 못하고 9,900원의 꽃다발을 하나 사서 나에게 선물했다.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고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A가 나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도록 나의 중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반응하던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e System, SNS)의 모든 체제가 가라 앉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의 무례한 어법과 흥분된 말투, 화가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에서 나는 휘둘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에게 선물한 꽃다발을 들고 집에 도착해서 한동안 위안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나를 돌보고 위로하면 될 일을. 예쁜 형태로 다시 꽃병에 담아 두자 꽃이 생명을 가졌고,
냉동수박에 쇼비농블랑 와인을 넣어 마시자 그보다 좋을 수 없는 조합을 알게 되었고,
그저 행복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이번 경험으로 인한 알아차림이란. 흥분하고 무례한 사람을 여유롭고 차분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는 합리화일 수도.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서 긴장하고 심장이 떨리기도 했던 경험에 대한 회고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나는 어쨌든, 사실은 흥분과 무례함으로 위장한 그녀가 아닌, 온전히 그 경험을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던 나 자신을 위한 축배를 들고 한참을 나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