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Art Center Nabi, 드릴소년
안녕하세요. 한치입니다.
2022년 제가 벌인 가장 엉뚱하고 잘한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카드를 쓰는 TRPG (보드게임)를 직접 디자인해본 것이었습니다.
이런 값진 경험을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불쑥 글을 끄적여봅니다.
본 게임은 현재 <타임라이너스 : 무한미래의 방문자들> 이라는 이름으로 텀블벅에서 절찬 펀딩 중입니다. 글을 읽어보시고 흥미가 생기신다면 좋아요 및 후원 부탁드리겠습니다.
https://link.tumblbug.com/noO39jLRiwb
2022년 여름, 오랜만에 들어가 본 페이스북의 피드에서 저는 흥미로운 게시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아트센터 나비'의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글이었는데요, 이미지가 다음과 같았습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작업에 쩔어있던 저는, 공고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바로 '나비보드게임 크루'에 지원해버렸습니다. 평소에 보드게임과 TRPG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저의 구미를 제대로 당겨버린 것이지요. 지원폼이 꽤 복잡하고 쓸 것이 많았는데, 이조차도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높였습니다.
그렇게 참여하게된 '나비보드게임 크루' 속에서 저는 저만의 게임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게 됩니다. 우선 제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걸 만들고 싶은 것인지, 생각부터 정리하게 되었죠. 아래와 같이 마인드맵을 그린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의 테마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은 금방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서양 판타지는 피하고 싶었습니다. 현대물, 혹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로 방향을 잡기로 하고, 구체적으로 레퍼런스를 잡을 작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 와중에 예전에 재미있게 본 한 SF 드라마가 생각이 났습니다.
거대 SF 프랜차이즈인 '스타트렉'의 뱀 꼬리 같은 작품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였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던 작품이지만, 현시점에서 다시보면 굉장히 괜찮은 그런 작품 되겠습니다.
이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의 4개 시즌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시간냉전'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31세기의 미래의 세력들이,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의 배경인 22세기로 요원들을 보내 서로에게 유리한 미래를 만드려는 견제와 암투를 벌인다. 라는 개념이었는데요, 저는 아예 이 '시간냉전'이라는 컨셉을 게임으로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또 저는 대학생 시절 굉장히 즐겁게 했던 어떤 게임을 떠올렸습니다. 정해진 룰은 느슨하고,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스토리텔링 게임이었죠. 바로 <옛날 옛적에>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Once upon a time> 이었습니다. 반복해서 즐겨도 재미있었던 이 게임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한데요, 이 <옛날 옛적에>에 SF 스킨을 씌우고, 시간냉전이라는 주제에 맞게 새로운 룰을 만들어준다면? 유레카!
저는 여기에 제가 좋아하는 TRPG의 캐릭터 만들기 요소도 도입하기로 하였고, <타임라이너스>라는 뭔가 거창한 제목도 정하였습니다.
시작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똥손이었기 때문에... 소리만 만질 줄 알지 시각적인 부분에는 영 자신이 없어서, <타임라이너스>의 첫번째 버전은 카드게임이라기보다는 워드프로세서로 만든 일종의 문서 같은 모양새였습니다.
카드를 내어 '종말시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뒤의 일은 다음 사람이 주사위를 굴려 결정한다. 라는 기본적인 룰은 이 때 확립이 되었고, 거의 수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미있는 룰이었습니다. 다만 역시 카드게임인만큼 예쁘고 멋진 카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걸 참았으면 펀딩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이 시점에서 저는 어둠 속의 빛 같은 서비스를 발견합니다.
바로 강력한 Text to Image 기능으로 화제가 된 'Midjourney AI' 였습니다. 이 툴을 통해 이미지를 생성해보니, 충분히 상용게임에도 쓸 수 있을 정도의 이미지를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저 같이 그림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도 카드게임 제작에 도전해볼 만한 길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미지만 좋다고 카드가 뚝딱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이미지들을 카드로 가공해야하는 일이 남아있었지요. 그 일은 제 친구 '드릴소년'이 해결해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함께 카드게임을 즐겨온 그에게 여러 조언을 얻고, 그와 함께 본격적인 카드 디자인에 몰두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이렇듯 미려한 디자인의 카드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idjourney AI'가 생각보다 쓰기가 어려워서 애도 먹었고, 인디자인이니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툴들도 처음부터 배워서 차근차근 만들어나갔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 지금도 신기합니다. 많은 도움을 준 친구 드릴소년에게 다시 한번 큰 감사를 전합니다. 이 때 Midjourney 쓰는 나름의 노하우들이 생겨서 이를 제 유튜브 채널에 영상으로 남기기도 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시청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각자의 보드게임을 제작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고, 이러쿵저러쿵 시간이 지나 '나비보드게임 크루' 프로그램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보드게임들을 발표하고, 후기를 공유하는 파티의 시간도 가졌었죠. 이 때 참여해주셨던 분들이, 예상보다 제 게임을 좋아해주셨습니다.
특히 (의외로) 여성 분들에게서 호의적인 의견을 많이 들었는데, 애초에 오타쿠 같은 게임을 기획했던 저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반응이었죠. 그리고, 일전에 '나비보드게임 크루'에서 강의를 해주셨던 보드게임 작가 '개리 킴'님의 응원도 있었습니다. '이런 게임은 분명히 수요가 있다. TRPG로 펀딩에 도전할 만하다' 라고 용기를 주셔서, 저는 까짓거 해보자는 마음으로 펀딩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펀딩도 처음이고, 제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보려는 시도 자체도 처음이라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텀블벅이라는 포맷에서 떼가는 수수료와, 완성된 보드게임의 배송비도 무시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더군요. 또한 상세 페이지와 각종 사진, 영상 홍보자료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품이 들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다시금 힘을 내게 만드는 매몰비용이 소모되었지요.
이리하여 많은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600만원이라는 펀딩 골을 정하고 2022년 12월 30일을 기하여 펀딩을 개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펀딩... 저스트하게 600만원으로 끝나게 된다면, 제가 제작비로 100여만원을 더 물고 끝내야하는 펀딩입니다. 어설프게 성공하느니 사실 실패하는게 나을지도 모르는 펀딩이죠. 그렇지만 저는 처음 도전해보는 분야에 이 정도까지 진도를 뺄 수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제작비를 내야되는 시점이 되면 과거의 저를 질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
<타임라이너스 : 무한미래의 방문자들> 은 역할극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쉽게 도전할 수 있게 디자인된 소프트한 포맷의 카드형 TRPG 게임입니다. 테스트 중 '룰이 간단해서 좋았다'. '다시 한번 플레이하고 싶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더랬죠.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게임이 다루는 주제는 퍽 무겁고 진중합니다. 플레이하시는 분의 성향에 따라서 상당히 하드한 내용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더불어 게임 제작 중에 Midjourney AI 로 생성한 유려한 일러스트들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 아트북인 <타임라이너스 : ART & ARCANA> 도 펀딩의 선물로 기획하였습니다. 이미지를 생성한 명령어, 컨셉들도 함께 실어서 보시는 재미가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저의 도전이 아름다운 결말을 맺을 수 있도록 관심있으신 분들의 후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냥 펀딩페이지 방문하셔서 구경하시고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도와주세요 ㅎㅎ
펀딩은 2023년 2월초에 마감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s://link.tumblbug.com/kJfdkOsYiw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