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a Rennt (1998)
끝 없는 질문에 답을 구하고 그 답은 새로운 질문을 창출한다
해답은 질문을 낳고 그 질문은 또 해답을 낳으니
결국은 같은 질문의 반복과 같은 해답의 연속이 아닐까
- 오프닝 시퀀스 中
전화벨이 신경질적으로 울리고, 롤라가 든 수화기 너머로 마니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마니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이고 그 안에 10만 마르크를 구하지 못하면 마니는 죽는다. 그리고 그 책임은 롤라에게 있다. 마니에 의하면 롤라가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10만 마르크를 잃어버렸고 따라서 롤라는 마니 대신 10만 마르크를 구해야만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로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롤라는 달린다. 붉은 머리를 찰랑이며 달리는 롤라의 뒤로 쿵쿵거리는 하우스 비트가 흐른다. 의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왜 일렉트로닉 음악인가?
1874년 미국의 엘리샤 그레이(Elisha Grey)에 의해 ‘뮤지컬 텔레그래프(Musical Telegraph)’라는 이름의 최초의 전자악기가 개발된 이래로 물리적 진동의 소리에서 벗어나 전기적 진동의 소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다. 이러한 시도들은 1960년 로버트 무그(Robert Moog)가 ‘무그 신서사이저(Moog Synthesizer)’를 발명하고 1976년 E-mu社에서 ‘E-mu 4060’이라는 디지털 시퀀서를 내장한 최초의 폴리포닉(Polyphnic) 신서사이저를 출시하며 획기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이어 멜로트론의 디지털화라고 할 수 있는 ‘샘플러(Sampler)’와 표준 음악 신호인 ‘MIDI’가 개발되면서 전기적 진동의 세계에 대한 정복은 큰 틀에서 마무리된다.
인간이 전기적 진동의 세계를 탐구한 이유는 그 것이 물리적 진동보다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리적 진동을 만들기 위해 성대를 쓰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그러나 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렇게 만든 소리마저도 항상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이는 물리적 진동이 만드는 소리에는 공간이나 공기의 성질 같은 예기치 못한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전기적으로 창조해낸 소리는 거의 완벽하게 인간의 통제를 받으며 물리적으로 만들 수 없는 특수한 소리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상용되기 시작한 전자악기들은 어쿠스틱 악기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다루기가 쉽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 악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 일렉트로닉 음악은 새로이 등장한 전자악기들을 실제 음악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발생하였다.
일렉트로닉 음악은 전기적 진동에서 비롯된 소리를 이용한 음악이고 테크놀로지의 힘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또 한편, 일렉트로닉 음악은 반복되는 비트와 인공적 소리가 주는 몽롱함을 통해 물질세계를 초월한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감성적 음악이며 원시성을 갖는다. 리듬은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성분이며 우리는 원시 샤먼의 제의에서 리듬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카고 하우스로부터 시작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역사는 미래성과 원시성이라는 대립되는 두 성질 간의 대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제2의 사랑의 여름(The Second Summer of Love)’이라고 부르는 유럽 레이브 파티가 보여준 샤머니즘적 광란.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지성화된 일렉트로닉 음악인 엠비언트(Ambient) 뮤직. 거기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하는 하드코어 계열의 정글(Jungle), 개버하우스(Gabber House). 다시 지성화된 정글이라고 할 수 있는 드럼 앤 베이스(Drum and Bass)까지. 일렉트로닉 음악은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다시 롤라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영화 중 롤라는 두 번 소리를 지른다. 한번은 마니의 전화를 받는 도중이고, 또 한번은 카지노의 룰렛이 도는 도중이다. 롤라의 비명소리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고 끝난다. 병이 깨지고, 창문이 날아간다. 잠시 간의 정적 후에 비트가 이어지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롤라를 따라 일렉트로닉 음악의 세계로 초대된다
롤라는 10만 마르크를 구하기 위해 달린다. 롤라가 누구인가? 롤라는 바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관통하며 달리는(Run) 비트이다. 비트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뭉뚱그린다. 어떤 샘플도, 어떤 소스도, 심지어 비음악적인 요소들까지 비트 안에서 모두 녹아들며 음악의 일부로 변한다. 롤라의 달리기 안에서 순간적으로 제시되는 타인들의 삶에 주목하자.
롤라를 비트, 더 확장시켜 일렉트로닉 음악을 상징하는 인물로 치환해보면, 일렉트로닉 음악과 마찬가지로 롤라의 태도에서도 이중성을 관찰 할 수 있다.
처음 롤라는 20분 안에 10만 마르크를 구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사고한다.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10만 마르크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롤라의 표정은 매우 차갑고 이지적이다.
그리고는 한다는 행동이 아버지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는 것이다. 차를 타거나 전화를 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러나 롤라는 굳이 자신의 몸을 활용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택한다. 이성적으로 사고한 끝에 얻어낸 생각을 원시적으로 실현하는 것. 이는 이성적으로 얻은 소리를 원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이 가지는 두 가지 성격과 통하고 있다.
더불어 롤라의 태도는 각 에피소드 간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차분하고 이지적인 태도,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아버지에게 총을 들이댈 정도의 폭력적인 태도,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절박한 태도에 이은 인간적인 유대 같은 것을 보인다. 이는 일렉트로닉 음악에서도 현대성과 원시성 중 어느 측면을 강화하느냐에 따라 어떤 음악은 엠비언트가 되고 어떤 음악은 개버하우스가 되는 것처럼 롤라라는 인물 안에 여러 성향이 공존함을 보여주는 듯 하다.
1980년대 전자 악기와 전자 음향을 가장 ‘남용한’ 장르는 바로 힙합일 것이다. 힙합의 탄생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설로 1970년대 중반 대도시 흑인 거주 지역의 거리에서 개최된 ‘블록 파티(Block Party)’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때 DJ는 두 개의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걸고서 그 것을 적당히 믹스하는 독특한 기법을 개발했고, 이에 맞춘 흑인의 목소리인 ‘랩’과 함께 힙합문화를 탄생시키게 된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기술적, 문화적 수단이 바로 ‘샘플링’이었다.
DJ는 여태까지의 뮤지션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뮤지션이다. 그는 음악을 직접 창작하거나 연주하지 않는다. 다만 음악을 그들만의 기법을 사용해 ‘틀어줄’ 뿐이었다.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컷 앤 믹스(Cut and Mix)’, ‘배리 스피드 컨트롤(vari-speed control)’,‘스크래치(Scratch)’ 등이 있다. 특히 ‘컷 앤 믹스’로 대표되는 DJ의 음악적인 ‘인용’는 일렉트로닉 음악 DJ 들에게 있어서도 복제의 미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1980년대 ‘MIDI’의 체결, 샘플러 체계의 통합으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 되었다.
사회학자 앤드루 굿윈(Andrew Goodwin)은 MIDI의 도입이 음악 전반에 미친 영향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음악이 비로소 순수한 ‘정보’, ‘데이터’가 되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작곡’이라는 예술적 과정은 ‘신호 처리’라는 공학적 작업와 통합되었다.
둘째, ‘가상트랙(vitual track)’의 등장으로 인해 무한대에 가까운 사운드 층위를 만들 수 잇게 되었다.
셋째, 전통적 의미의 뮤지션의 역할이 축소되고, 뮤지션 없이도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이다.
이제 음악에 있어서 리믹스는 더 이상 표절의 문제와 엮이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주고 원래 곡과는 전혀 다른 리믹스를 만들어 달라고 할 정도다. 심지어 그 리믹스를 다시 리믹스하는 리리믹스까지 존재한다. 이들은 오리지널과는 전혀 다른 리믹스만의 미학적 가치를 품고 재생산된다.
롤라의 달리기를 감독에 의해 재생된 달리기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가장 처음 에피소드를 오리지널로 본다면(물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두 번째 에피소드는 리믹스, 세 번째는 리리믹스가 된다. 실제로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의 롤라가 뛰는 부분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와 같은 화면이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롤라는 ‘비트’로서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닌다. 과정은 미묘하게 달라지고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롤라가 비트라면 사람들은 비트 위에 얹혀지는 샘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롤라’의 삶에 타인의 삶이 집적하는 이 같은 형태는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DJ가 자신의 음악에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잘라서 붙이는 ‘컷 앤 믹스’의 형태와 일치한다. 또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DJ는 보통 샘플을 그대로 붙이기보다는 입맛에 맞게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을 가해서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롤라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미래는 매 에피소드마다 상이한 모습으로 귀결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타인의 삶이 미묘하게 변화됨에 따라 그 것이 롤라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이 같은 모습이 가장 크게 관찰되는데 이는 단지 ‘나비효과’에서 처럼 작은 계기가 큰 사건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이 롤라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에 롤라 역시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즉, 롤라와 타인은 확연히 다른 객체이지만 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연관을 맺게 된다. 이는 일렉트로닉 음악에서도 샘플링 된 음악과 샘플링 하고 있는 음악 사이의 상호 텍스트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가령 ‘DJ Shadow’가 1996년에 발표한 앨범 ‘Entroducing’를 들어보면, 전혀 소스에서 따온 소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샘플들끼리의 조화, 샘플과 전체 음악 사이에서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
앞서 일렉트로닉 음악의 이중성을 이야기하며 일렉트로닉 음악의 역사의 한 토막을 언급했다. 그런데 이런 반복되는 역사는 비단 일렉트로닉 음악의 역사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역사에서 보여진다.
묘하게도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 끝 무렵에는 재즈 스탠다드인 ‘What a difference the day made'가 흐른다. 대중음악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34년에 작곡된 곡이 첨단 음악인 일렉트로닉 음악 사이에 불쑥 낀 것은 반복되는 날들 속의 무수한 시작을 암시하는 것일까?
결국 궁극적인 끝은 없다. E.H 카는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말하지만 그도 역사가 몇 번 회전하는지는 몰랐다. 일렉트로닉 음악에서도, 학문에서도, 예술에서도, 모든 것에서도. 심지어 롤라의 삶에서는 죽음마저도 번복되고 반복된다. 정확히 말해서 끝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롤라는 남자친구 마니에게 끝내 자신이 구한 10만 마르크를 전달하지 못한다. ‘마니에게 10만 마르크 전하기’는 마니가 자신이 잃어버린 10만 마르크를 찾음으로써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과제로 변한다. 즉, 롤라는 사라져 버릴 목표를 위해서 뛰어다닌 셈이 된다.
이제 다시 최초의 물음으로 돌아오자면, 달리는 롤라의 배경음악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이 사용된 것은, 단순히 일렉트로닉 음악이 신나서 만은 아니다. 영화의 구성 자체가 일렉트로닉 음악의 기법을 상당 부분 닮아있고, 일렉트로닉 음악의 현대성과 원시성이라는 이중적 성격이 롤라의 성격, 그리고 영화의 주제와 묘하게 닿아있기 때문이다.
‘비트’는 ‘롤라’로 변주되고 ‘비트’처럼 반복적이면서 앞으로 치닫는 삶을 사는 것은 현대인이다. 이렇게 되면 ‘롤라’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된다. 현대인이 일렉트로닉 음악에 열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분법적인 사고이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야생을 바라면서도 도시를 버리지 못하고 이성적 사고를 신봉하면서도 대체로 감성적이다. 그 사이를 가르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맞추어 오늘도 수천, 수억의 롤라가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