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exter Gordon (1962)
도구를 신체의 연장이라고들 하는데, 색소폰은 입을 연장하는 도구로서 제격인 악기야. 연주자의 성격과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은 모든 악기의 공통점이지만, 연주자의 숨결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악기는 유별나고, 그중에서도 색소폰은 독보적인 매력을 가졌지. 아주 작은 떨림에서부터 거대한 울림까지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나믹 레인지, 주법과 입모양, 심지어 주자의 두상과 골격에서도 영향을 받아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음색. 색소폰이 재즈를 대표하는 악기임에는 이견이 없을 거야. 그렇다면 색소폰을 대표하는 재즈 앨범으로는 무엇을 꼽아야 할까?
20대 후반, 재즈 아카데미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가벼운 밤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어. CDP에 헤드폰을 눌러쓰고 마로니에 공원 맞은 편 학림 다방 앞에서 출발하여, 서울대학교 병원, 창경궁의 명정문, 창덕궁 인정문을 지나 안국역으로 향하는 여정. 딱히 집으로 가는 길도 아니었고 오히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걱정이 많고 에너지가 넘쳤던 당시의 나에게는 소중한 사색의 시간이었어.
그 어느 날엔가 들었던 앨범 중 Dexter Gordon의 《Go!》가 있었지. 유명해서 샀고, 둘째로 커버가 예뻐서 종종 들었던 음반이었어. (블루노트 음반들의 커버가 으레 그렇지만, 참 지금 보아도 유려하고 깔끔한 디자인 아니니?)
창경궁에서 창덕궁을 넘어가는 어느 지점에선가 〈Where Are You?〉를 듣는 중이었는데, 색소폰 소리가 헤드폰 밖으로 퍼져나가 밤공기를 물들이는거야. 그 색은 점점 진해져 까만 밤 하늘을 더 까맣게 칠하고 덧칠했고 나는 숨이 턱 막히기 시작했어.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 결국 그 날은 인정문 앞 벤치에 앉아 열대야의 매미 소리를 곁들여 《Go!》를 한번 더 집중해 들은 뒤에야 안국역에 이를 수 있었어.
커버 만큼이나 모던하고 젠틀한 음악이 깔끔하게 담긴, 그래서 평소에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자주 듣던 《Go!》였지만 숨이 막혔던 그 날 이후, 나는 ‘대체 이걸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게 되었어. 왜 좋은가? 나의 대답은 ‘색소폰의 양감 때문’이야.
색소폰에 양감이라니? 의아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사실이지. Dexter Gordon의 색소폰에는 분명 꽉찬 부피, 무거운 무게, ‘양감’이 존재하니까. 비브라토를 다소 배제한 채 직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색소폰의 그 묵직한 질감은, 마치 검고 굵은 마커로 거침없이 써나가는 글씨 같아. 그런데 그냥 굵고 크기만한 소리도 아니야. 중간중간 스며들어 있는 서브톤(Subtone, 숨소리가 섞인 색소폰 톤) 역시 기가 막히지. Stan Getz나 Ben Webster가 들려주는 날아갈 듯한 그런 서브톤은 아니지만, 선 굵고 호탕한 연주에 살짝씩 섞이는 은근한 그의 서브톤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야. 만약 이 서브톤이 없었다면 Dexter Gordon의 연주는 다소 마초적이고 경박하게 들렸을지도 몰라. 바로 이 서브톤 덕분에 그의 연주가 풀정장을 갖춰 입은 신사처럼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해. 마냥 검은 색 글씨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까마귀의 검은 깃털처럼 온갖 색을 품은 블랙이었달까.
더 놀라운 점은, 그의 연주 도처에서 들리는 유머 감각이야. 그의 특기는 음악적 ‘인용’인데, 앨범을 듣는 동안 그의 연주 곳곳에서 익숙한 주제를 들을 수 있어. 〈Second Balcony Jump〉의 아웃로와 〈Three O’Clock in the Moring〉에서 인트로를 들으면 누구나 ‘어!?’하고 반응할 수 밖에 없을 거야. 언뜻 그냥 장난스럽게 치부될 수 있는 이러한 시도들도, Dexter Gordon과 세션맨들의 훌륭한 연주로 승화되었어. 그래서 이 앨범은 비밥, 하드밥의 명반으로서 자리매김하면서도 어렵지가 않아. 미소를 짓게하는 재즈앨범, 행복감을 주는 재즈 앨범이라니! 길이남아 마땅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로, Dexter Gordon의 키는 6피트 6인치, 약 2미터에 가까웠다고 한다.
Release Date 1962
Recording Date August 27, 1962
Recording Location New York, 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