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에 지구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의 세상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 아닐까?
개미는 평생을 2차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어떤 호기심에 찬 어린 아이가 개미를 들어올리는 일이 있으면 몸이 붕 뜨면서 처음으로 Z축이라는 것을 광범위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 여하튼 간에, 그렇듯 대부분의 인간도 그냥 매일 물리법칙 하에서 납득 가능한 선에서 3차원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4차원, 5차원, 6차원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모로 인간인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관점이 오히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물론 나쁜 일 했다고 바로 벌 주고, 착한 일 했다고 바로 상 주는 신이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어떤 관념적 존재로서의 신이든, 기복적 존재의 신이든, 아니면 신이라는 단어가 영 거북하다면 그냥 우주 그 자체이든, 상위 자아든 간에 뭐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일할 때는 늘 기분이 나빴다가 퇴근할 때 되면 그제서야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종일 왔다 갔다 하는 그 변덕스러운 ‘나’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덜 답답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게 확실한 나의 의견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살펴본 관찰자로서의 의식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가지면 조금 더 확실하고 체계적으로 그 ‘무언가’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또 무조건 종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사이비는 더 철저하게 조심해야 한다.
이제 편의상 그 무언가를 ‘상위 자아’라고 지칭하겠다. 상위 자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있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절대 자신의 인생을 망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오히려 굉장히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 상위 자아에 대한 긍정적 믿음과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이 훌륭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불현 듯 주어졌을 때, 그 고통에만 사로잡혀서 지나간 것을 후회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낙담하고 스스로를 헤치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상위 자아에 대한 개념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그런 고통에 빠져 있을 지언정 영원히 빠져있진 않는다. 궁극에는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 주어졌을까? 무엇을 배우라는 의미일까?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할까?
하는 숙고적인 통찰을 반복하며 큰 배움을 얻고 다음 단계로 영혼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통찰은 감정 흘려보내기 기법을 반복하면서 깨어 있는 순간이 길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얻게 되고, 더 나아가서 상위 자아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통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 배움을 토대로 같은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극복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상위 자아를 잘 활용하는 자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일상이 절대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알고 상위자아와 소통하며 감사해한다. 그리고 그 감사의 에너지를 증폭시켜 더욱 크게 감사할 일들, 흔히 말하는 좋은 일과 행운들을 불러들인다.
나는 사람은 스스로 믿는 만큼의 세상을 본다고 믿는다. 이 말들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상위 자아의 개념을 잘 활용할 것이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지금과 같은 인생 이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믿는 만큼의 세상을 보는 것이 맞지 않은가.
다만 몰랐지만 이제야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고전 베스트셀러인 ‘시크릿’류의 서적들을 하나씩 보고 관련 영성 유튜브도 참고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