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세도나 메서드
지금까지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돈을 지키고, 모으고, 불리는 방법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위 가이드대로 실천하고, 심화 공부를 해나가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더 조급해진다.
나도 10년 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루었고, 자산이 늘었지만 그 때보다 훨씬 더 조급할 때가 많다.
당신 또한 돈과 자산이 아무리 늘어나도, 여전히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너무나 탐욕스럽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은 원래 그런 나라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아무리 돈을 벌어도 옆 사람이 10년 전에 사둔 아파트 하나가 훨씬 더 오르기 때문일까?
그렇게 당신은 반드시 이 생에 절대 닿을 수 없는 욕망의 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 욕망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자본주의를 잘 다루며 살아가되,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Part 2, 인력에서 시작한다.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대화하는가?
단 한 순간도 의식적으로 대화하지 않는 날들은 얼마나 많은가?
단언컨대 앞으로 당신이 살아갈 날들에, 스스로와의 대화가 지금과 같이 부재하다면, 삶은 단 1%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며,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직장에 다니며,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 내 자산과 빚은 어떠하며, 나는 어떤 취미와 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1.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2. 그 감정은 나인가?
3.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 세 가지다.
위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반복하며, ‘현재 나를 관찰하는 의식으로 깨어있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조차 자꾸 잊고 만다. 그리고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사회적 욕망에 개인을 투영하여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좇기 시작한다.
그 신기루는 보통 ‘~~면, ~~거야’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험에 합격한다면, 아주 행복할거야.
직장을 그만둔다면, 아주 행복할거야.
그 사람과 결혼한다면, 아주 행복할거야.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아주 행복할거야.
로또에 당첨된다면, 아주 행복할거야.
또는, 과거에 대한 후회에서부터 비롯되어 ‘~~했다면, ~~했겠지’의 문장인 경우도 있다.
그 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행복했겠지.
그 때 그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참 좋았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은 결코 단 한 순간도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다. 그냥 매 순간, 당신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숨의 찰나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조건이 붙은 행복은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조건은 항상 과거나 미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 감정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귀 기울여보라.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 생각 꼬리물기를 하려는 스스로를 바라보고, 인내를 가지고 그저 그 감정을 쳐다보라. 천천히, 가슴 속에서 그 감정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움직이며 실제 몸에서 어떤 반응을 하는지 온전히 받아들여보라. 그리고 그 감정이 온 몸을 통과하고 지나갔을 때, 어떤 후련한 마음이 드는지 관찰하라.
이 때, <세도나 메서드> 기법을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1. 이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나?
2. 이 감정을 흘려보내고 싶은가?
3. 이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는가?
4. 언제 흘려보내겠는가?
1-3의 질문은 질문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대답은 ‘예’, ‘아니오’ 중에 매우 솔직하게 하면 된다. 3번 모두 ‘아니오’라고 답했어도 전혀 중요치 않다.
4에 대한 답은 ‘지금’으로 통일한다.
1-4의 질문과 대답을 1회 반복 후 처음에 비해 감정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관찰하고, 아직 남아 있다면 다시 몇 번이고 반복하여 감정이 흘러나가는 경험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도 수없이 반복해보았지만, 할 때마다 ‘이번 감정은 너무도 강력해서 절대 흘려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일말의 좌절감에서 시작하곤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100%의 확률로 그 어떤 강력한 감정도 결국 흘려보낼 수 있었다. 강력할수록 여러 회차를 반복해야 할 수 있지만, 흘려보내지지 않는 감정은 절대 없다고 확신한다. 감정을 흘려보내고 나면, 마치 무거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 후 느끼는 가볍고 상쾌한 느낌을 몇 만 배로 증폭시킨 상쾌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대개는 부정적인 감정에만 적용시키지만, 본 기법은 긍정적인 감정을 포함해서 모든 감정에 적용시킬 수 있으며, 그 어떤 감정도 흘려보낼 때 점점 자유롭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해서 억울하다”라는 생각과, 분노라는 감정이 공존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 때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반드시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꼬리물기를 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누구의 잘못이었고, 내가 뒤집어썼고, 그 사람은 예전에도 그랬고, 이걸 복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억울함을 밝힐 수 있을지.. 생각은 생각을 계속 부른다. 그러나 이 때 생각하기를 멈추고, 가슴에서 느껴지는 분노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에 집중한다. 실제로 강렬하고 부정적인 사건에 따르는 감정일수록 감정을 바라 볼 때 가슴의 통증과 호흡의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꾸 생각으로 도망가고 싶어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은 회피수단이다. 감정을 직면하고, 신체의 고통을 잠시라도 용기 있게 마주하며 호흡하라. 그리고 <세도나 메서드>기법을 적용하자.
이렇게 직면하고 흘려보낸 감정은 반드시, 반드시 지나간다. 그러나 생각으로 회피했을 때, 감정은 결국 몸에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한의학적으로 ‘화병’이라는 질환으로 나타난다.
호흡과 함께 감정이 지나감을 느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이 감정은, 나인가?
어떤 답이 나오든, 다음 질문을 하라.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반복할수록, 지나가는 바람이 나그네가 될 수 없듯 흘려보낸 감정이 나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감정을 묻고 처리하기 위해 떠올린 생각들 또한 내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도대체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내 손인가, 발인가, 배인가. 아니면 얼굴인가. 그렇지만 신체의 일부가 사라졌다고 내가 사라졌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나는 신체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나는 바라보는 의식 그 자체일 뿐이다.
느껴지는 꿈같은 감정들을 모두 깨어서 바라볼 수 있는 의식, 그 하나된 의식이 ‘참된 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챘다가, 다시 잠으로 빠져들어 꿈 속을 헤매다, 다시 또 알아채곤 한다. 대부분은 평생을 꿈 속에서 헤매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어떠한 욕망들이 자신인 줄 착각하고 그 안에서 허망한 것들을 붙잡다가 평생을 휘둘리기도 한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없으며, 옳은 것도 없다. 그저 우리는 길고 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필요에 의한 사고를 하되, 스스로를 괴롭히는 꿈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알아차리려는 연습을 가볍게, 매일, 매 순간 해나가라. 그 의식으로 존재하는 한, 당신은 온전히 자유롭다. 그리고 태초부터 자유로웠으며, 그 사실을 잊은 순간들만 있었을 뿐, 그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가벼운 나로 깨어 있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도리어 주변 인간관계들에 대한 뿌리 깊은 감정들이 하나 둘씩 요동치는 시간을 맞게 되기도 한다. 마치 한의학에서 말하는 명현반응처럼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 마주했어야 할 감정들이기에, 최선을 다해 안아주고, 바라보고, 놓아주는 연습을 반복하면 된다. 그것이 아무리 깊고 무거운 감정이더라도, 반복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절대. 용기를 가지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묵은 뿌리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풀어줘라. 그것이 모두 풀리게 되는 날, 더 없이 가볍고 상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드는 스스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위 예시에서 ‘분노’라는 감정을 다루었다. 그러나 감정 흘려보내기를 하다 보면, ‘분노’에 대해서만 흘려보내고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치 고구마 줄기를 캐듯이, 분노를 당기면 다른 감정들이 하나씩 딸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억울한 사건에 대한 ‘분노’로 시작했지만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은 그 사건으로 내 평판이 안 좋아질까봐 그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머리로는 그 사건 하나로 평판이 그렇게 깎일 수 없다, 그리고 해고 당한다거나 일신 상의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도 불안이라는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역시 생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영역임을 알기에, 이 때 불안을 흘려보내고 나니 ‘공포’가 보였다. 그 공포는 사실은 해고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내가 실수하기도 하는 사실 별 거 아닌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들킬 것에 대한 공포감이었다. 그리고 이 공포는 생존에 대한 공포였다. ‘이 사회에선 대단한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었다.
그렇게 가장 뿌리 깊은 고구마 줄기 감정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흘려보내고 나니
꼭 그리 대단한 사람만 생존할 수 있나? 그렇지 않던데..
그리고 내가 별거 아니면 어쩔건데?
하는 이성적인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적인 공포와 불안, 분노가 모두 지나가버린 자리에 존재의 자유로움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마다 출생과 유아 시기를 거치면서 근본적인 방어 기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 때 각자가 가진 고구마 줄기의 종류와 개수가 다양해진다. 물론 도저히 혼자 힘으로 끌고 나올 수 없는 줄기이거나, 도리어 줄기가 덩굴처럼 스스로를 압도하고 옭아맬 정도로 거대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혼자의 힘으로도 처리할 수 있는 크기의 고구마 줄기인 경우도 꽤나 많기 때문에, 하나씩 캐보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바란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고구마 줄기를 건드려주는 고마운 사건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