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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22. 2021

해피시티

게임하듯 마케팅

어릴 때 내가 유일하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던 게임이 있다. 해피시티라는 게임인데 지금의 메타버스와 비슷한 RPG 게임이다. 사용자는 유아, 청년, 성인 형태의 아바타를 만들 수 있고 직업 또한 세 가지로 분류됐다. 1차 원료를 캐는 생산직, 원료를 제련하고 가공해서 상품화하는 2차 기술직, 가공 상품을 판매하는 3차 판매직. 내 직업은 3차 판매직 중 거래상이었다.


거래상은 참 편한 게 자다가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가 가능했다. 하루 내내 돗자리를 펼쳐놓고 학교 갔다 오고 학원 숙제하고 돌아오면 물건이 팔려있는 그런 구조의 직업이었다. 이 직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좌판이라는 돗자리 모양 아이템만 있으면 됐는데 기본 좌판에는 세 개, 비싼 좌판에는 많게는 다섯 개까지 상품을 팔 수 있었다.


구좌가 한정되다 보니 여기에 어떤 물건을 올려놔야 할까? 이게 내가 늘 하던 고민이었다. 뭘 올려놓아야 돈이 될까. 어느 장소에 가야 모조리 다 팔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걸 어떻게 팔아야 잘 팔릴까. 대략 이런 류의 고민을 했었는데 커서도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릴 때 게임해서 했던 직업과 커서 현실에서 하는 직무인 마케팅은 참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게임에서 배운 마케팅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1. 고급화 전략

게임에서는 특급 이벤트 아이템들이 가끔씩 나왔다. 그걸 팔면 한 번에 캐시를 확 끌어당길 수 있었는데 대체 왜 이런 아이템들이 이벤트로 나오는지 궁금했었다.


그렇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깨닫게 됐다. 소수만 가질 수 있는 특권. 이런 것들을 공략하면 사실상 시기를 막론하고 상품 판매가 잘 일어났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살아나는 명품 시장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겠다.


전자 제품 브랜드 중에서 이런 전략을 잘 세우는 건 단연코 애플인데 고관여 상품을 마케팅하게 될 때는 그 상품만의 value(애플의 경우에는 디자인)를 강조하되 높은 가격은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상품의 fit이 크게 바뀌는 건 value를 떨어트리기에 지양하는 게 좋다.


'애플, 4면이 방화 유리 처리된 아이폰 출시'와 같은 기사를 보면서 아이폰의 디자인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조금씩 업그레이드함으로써 고급 아이템을 사고 싶어 하는 고객 needs를 충족시킨다는 걸 엿볼 수 있다.  



2. 판매를 장하는 입지 선점

거래를 할 때 정말 중요한 건 입지다. 해피시티는 도시와 도시 간 텔레포트 기능이 있는 곳에서 항상 물건이 잘 팔렸다. 꼭 거쳐갈 수밖에 없는 거점 구역이라서 그런지 유동인구가 많았고 그만큼 상권이 발달하게 돼있었다. 상권이 발달하면 만날 수 있는 고객이 많아지니 좌판에 내놓은 물건이 빠르게 팔렸다.  


디지털 마케팅 시대에 입지란 사실상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플랫폼 서비스는 일단 트래픽이 좋으면 수익이 당장 나오지 않더라도 기업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리고 그들의 체류시간이 길면 이 플랫폼은 타제품/서비스 회사가 탐낼 만큼 좋은 입지라고 할 수 있겠다. 좋은 입지를 선점하기 위해 광고 요청이 불붙듯 들어오고 그 수익만으로도 BM을 구축하긴 쉽다. 고객 경험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커머스를 붙이기도 가능하다.  




온라인 세상이든 오프라인 세상이든 사람이 모이면 상거래가 일어나고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하며 경제 활동 인구가 되어 사회가 이루어진다는게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게임을 통해 물건을 파는 재미도 물론 좋았지만, 더 재밌었던 건 내가 이 게임을 통해 현실 세상을 좀더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초반에 아무것도 없이 캐릭터를 생성했을 땐 원료가 곧 화폐로 통용됐는데 서버 환경 탓인 건지 원료로 사용되는 씨앗이 많이 나올 때 단가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통화량이 많아지면 화폐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진다.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자산이 곧 답이다.'요즘 이런 경제 기사를 볼 때면 그 옛날 씨앗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쩌면 게임에서의 거래상 역할이 내가 마케팅 일을 하게 된 최초의 씨앗이지 않았을까. 직무 탓인지 몰라도 게임의 룰을 이해하면 사실상 일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기 편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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