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축제를 열지 않기로 했다.
2020년 초, 나는 여의도 벚꽃축제 총괄이라는 자리에 갑작스럽게 채용되었다.
입사 첫날부터 내 책상에 앉을 틈도 없이 곧장 현장에 투입됐다.
사내 인트라넷 아이디조차 만들지 못한 채, 나는 바로 벚꽃길 위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 해의 봄은, 축제를 열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축제를 열지 않기 위한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2020년은 코로나19가 국내에 막 퍼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1월부터 점차 확산된 바이러스는 3월엔 전국적 위기 상황이 되었고,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봄 축제는 사실상 전면 중단이 권고되었다.
여의도 벚꽃축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취소가 아니었다.
벚꽃은 막을 수 없다.
기후와 계절에 맞춰, 늘 그 자리에서 피어난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어떻게 벚꽃길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을까."
그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였다.
이 과제 앞에서, 우리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국회 뒤편 벚꽃길 1.7km 구간 전체를 펜스로 둘러싸고 완전 통제하기로 한 것이다.
차량도, 보행자도, 모두 출입금지.
상황실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24시간 공무원들이 교대 근무를 하며 길목을 지켰다.
나는 그때부터 열흘간, 벚꽃길 위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수십 명의 인력이 낮밤을 바꿔가며 현장을 지켰고, 나는 축제의 총괄 기획자임에도 불구하고, 축제를 열지 않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동선을 막는 일에 몰두했다.
기획은 곧 통제였고, 준비는 곧 차단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된 벚꽃길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차도, 사람도 없는 1.7km의 길 위에, 벚꽃잎이 눈처럼 내려앉았다.
벚꽃이 피어나고 흩날려 떨어질 때까지,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그 길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고,
그 안에 선 나 역시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평균 근속 20년 이상인 공무원 조직에서 매년 벚꽃길을 지겹게 봐온 내 상사들조차 그랬다.
“지금껏 본 벚꽃길 중 제일 예쁘다”고.
그러나 이 길은 비정상이었다.
기획자는 기획하지 못하고, 축제는 열리지 않았고, 봄은 닫혀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 길은 너무나 완벽했기에 오히려 아팠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풍경이었기에.
벚꽃길 전면 통제를 준비하며 잊지 못할 회의가 하나 있었다.
“벚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두고 각 부서가 머리를 맞대던 자리였다.
그때 회의의 상석을 차지한 높으신 분들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야간에 강풍기를 틀어… 벚꽃을 다 떨어뜨리는 건 어때요?”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이야기지만, 그땐 모두가 진지했다.
나도 그 아이디어에 살짝 마음이 기울 뻔했다.
벚꽃을 없앨 수 없다면, 떨어뜨리자.
벚꽃을 보러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우리는 이토록 창의적(?)이었고, 그만큼 절박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그렇게 펜스를 세우고 막아낸 벚꽃길 1.7km는, 여의도의 극히 일부였다.
여의도는 둘레가 8.4km인 섬이다.
섬 전체를 둘러싸듯 벚꽃이 피어난다.
즉, 사람들이 벚꽃을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여의도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단지 매년 교통통제를 하고 축제를 열던 구간이었기에, 상징적으로 막았던 것일뿐.
그 해의 봄은, 각자의 자리로 찾아왔을 것이다.
벚꽃은 길목마다 피어 있었고,
사람들은 점심시간마다, 퇴근길마다, 혹은 주말 오후마다 그 꽃을 마주했을 것이다.
우리는 축제를 열지 않았지만, 봄은 사람들의 방식으로 피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봄이 벚꽃축제 기획자로서의 시작이었다.
축제를 준비하는 법이 아닌, 축제를 멈추는 법부터 배운 첫 봄.
그건 내가 생각했던 기획자의 역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공부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