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벚꽃 로또, 누구에게 봄이 갈 것인가.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라고 내건 2020년의 벚꽃길 현수막 메시지가 무색하게도,
코로나19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었고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는건 불가능해 보였다.
2020년, 전면 통제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벚꽃축제를 '멈췄던' 우리는
2021년, 또 다시 기로에 섰다.
1년 내내 전국의 모든 축제와 행사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과연 2년 연속으로 축제를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
때마침 '온라인'과 '화상'이라는 개념이 사회 전반의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재택근무과 보편화 되고, 화상회의가 익숙해지던 새로운 현실 속에서,
우리도 벚꽃축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급기야 모 방송사에서는 유명 가수들을 초청해 드라이브 스루 형태의 콘서트를 선보이며 급격한 거리두기로 인해 우울감이 팽패해진 사회에 위로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마음 방역차'라는 타이틀을 달고 집 베란다에서 볼 수 있는 이동형 공연 등을 선보이며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여의도 벚꽃축제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축제 중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고,
또 시기적으로 연초에 진행되다 보니 앞서 참고할 만한 축제 사례들도 마땅치 않은 데다,
어떤 행보를 하든 언론과 대중에게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받는 축제이다보니
내 입장에서는 축제를 해도, 하지 않아도 부담인 상황이었다.
고민끝에 우리는 2020년처럼 길을 통제하되,
방역 지침을 준수하는 전제 아래 제한된 인원이라도 벚꽃길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이 길을 직접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온라인으로 봄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서 선보이기로 했다.
아름다운 벚꽃길 영상, 방문객들의 사진과 사연 공유 이벤트, 클릭만으로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홈페이지 등, 참으로 쉽지 않은 이원화 운영의 시작이었다.
방역수칙을 준수한 오프라인 프로그램과 온라인 콘텐츠들이 병행되는 최초의 벚꽃축제였다.
많지 않은 예산으로 무리하게 그림을 그렸지만, 대규모 축제의 대표격인 우리 축제가 좀 더 선도적인 대안들을 선보인다면 이쪽 분야에 좋은 참고사례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 2021년 벚꽃축제 온라인 컨텐츠 모아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Q5B7v__Rp-A
당시 방역 지침은 모든 행사를 99명 이내로만 모이도록 제한했다. '99명'.
1.7km에 달하는 넓은 벚꽃길에 고작 99명이라니, 듣기만 해도 너무 적은 숫자였다.
솔직히 말해서, 1.7km 도로에 사람 99명이 서 있으면 그게 모여있는 티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침은 지침이었다.
우리는 이 99명이라는 숫자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결론은 이러했다.
1.7km 구간의 벚꽃길을 천천히 걷고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최대 1시간 30분으로 정하고,
하루에 총 7타임을 운영하기로 했다.
즉, 1시간 30분 동안은 온전히 벚꽃길이 '99명을 위한 길'이 되는 것이다.
마치 프라이빗한 정원처럼, 소수에게만 허락된 공간을 제공하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더 큰 문제가 불거졌다.
'누구를 99명 안에 들여보낼 것인가'였다.
특정 계층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모두에게 열려 있던 벚꽃축제의 상징성을 훼손하고, 자칫 '역차별'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이 문제는 정말 치열한 회의를 거듭하게 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협의하고,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며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다.
99명 중 약 30%에 해당하는 27명은 영등포구 관내 사회적 약자(장애인 등)에게 할당하고,
나머지 72명은 일반 시민들이 응모 후 추첨을 통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추첨의 전 과정은 자동화 시켜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 결정이 발표되자 언론과 대중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벚꽃 로또’ '벚꽃 래플'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그 파급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벚꽃을 보기 위해 응모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모두가 봄을 갈망했으니까.
오프라인 벚꽃길을 밟는 99명은 그렇게 하루 7타임, 한 타임당 1시간 30분씩 걸으며 봄을 맞았다.
제한된 시간, 제한된 인원, 조용한 공간.
그리고 온라인에서는 그 길을 대신 전할 수 있는 영상, 사연,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을 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원화 운영이라는 말은 멋졌지만, 실상은 실무자 입장에선 업무가 두 배라 모두가 죽을 맛이었다.
힘든만큼 논란도 많았다.
"이런 시국에 축제를 왜 강행하려 하느냐"는 댓글들이 기사마다 달렸고,
"추첨제로 소수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 덧붙이자면, 실명을 이용해야만 참여가 가능한 응모권이라 명의 도용 입장은 불가능했고, 중고마켓 등 모니터링으로 실제 리셀이 되는지 계속 확인했다. 실제 돈을 주고 입장권이 거래된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함께 이 전 과정을 고민했던 강원재 영등포문화재단 대표님의 페이스북 글은 당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매일 콩나물 버스와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새로 오픈한 백화점은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지난 1년 간 전국의 모든 축제는 당연한 듯 취소되고,
공연장, 전시장 문화공간 운영자는 고사 직전인데
축제와 공연, 전시를 업으로 삼아온 창작자와 엔지니어들의 살림살이는 누가 돌보고 있을까?
방역지침 무시하고 '각자도생'으로라도 살아가라고 할 게 아니라면
공공의 재정이 큰 비중으로 편성되어 작동하는 문화예술분야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공공마저 재정 투입을 대책없이 장기간 멈추고 있으면 안된다.
공공은 이럴 때일수록 방역기준에 맞는 안전한 문화예술의 시공간을 창출하고 관리하면서
창작자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그들의 미적 표현물을 필요로 하는
많은 분들의 힘겨운 삶을 응원하고 치유하고 기도가 되어 닿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은 '왜 이렇게 무리하게 축제를 강행하느냐'는 내,외부의 비판과 시선에 맞서며 제한적 관람을 추진하고 축제를 열었던 우리의 신념과 같았다.
단순히 벚꽃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문화예술계와 지친 시민들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축제라는 이름 아래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와 삶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안전한 방역 기준을 지키면서도 끈을 놓지 않으려는 우리 나름의 노력이었다.
이렇게 강행했던 '제한적 벚꽃 관람'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던 과정에 비해
예상보다 빠르게 개화하고 비가 오며 떨어져버린 벚꽃 덕분에 당초 예상했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 종료하게 되었다.
역시... 벚꽃은 나의 기획의도와 노력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눈물)
그리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 옛 말처럼,
'리셀가 30만원' '로또' 등의 타이틀이 붙어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것과 달리,
불참하더라도 패널티가 없었던 나이브한 당첨 시스템으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 절반정도 수준의 당첨자만 입장하며 운영의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예비 당첨자라도 미리 선정을 해서 최대한의 노쇼를 막았어야 하나,
아니면 현장에서라도 대기 신청을 좀 받아두었어야 하나,
오만가지 고민들이 말끔하게 풀어내지 못한 채 남아있다.
후일담으로, 2021년의 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벚꽃축제를 끝내고 나서,
다른 지자체와 기관들에서 '제한적 관람'을 시도했던 이 벚꽃축제의 계획안을 공유해줄 수 있는지 문의가 많이 왔다.
우리가 했던 시도를 보고 다른 곳들에서도 방역 수칙을 준수하면서도 축제를 개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나에게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단순히 벚꽃축제를 열었던 것이 아니라, 팬데믹 시대에 새로운 축제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었다.
나는 그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대외 공개가 가능한 선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잘 갈무리하여 공유해 드렸던 기억이 난다.
"여기 축제가 있어요. 그리고 삶을 힘껏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외치는 일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그 작은 불씨가 다른 지역에도 희망의 빛을 던져준 것이다.
벚꽃길을 걸으며, 기획자는 무언가를 ‘시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왜 하느냐고 묻지만, 그 시도 없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2021년의 벚꽃은 그렇게, 엄격한 통제와 치열한 고민 속에서 피어났다.
비록 모두에게 열린 축제는 아니었지만,
그 제한된 공간 속에서 피어난 벚꽃은 팬데믹 시대의 인내와 희망,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우리는 단순히 벚꽃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 속에서 문화가 어떻게 존속하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증명하려 했다.
길을 나누어 걸었던 벚꽃길 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발하던 수많은 노력과 염원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2021년에도 벚꽃은 어김없이 피었고,
그 봄엔 99명씩,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봄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