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5년간의 벚꽃축제 생존기 (4)

2022년. 한 방향으로 흐르는 봄.

by 아이린

2020년, 벚꽃을 막아섰던 '멈춤'의 한 해.

2021년, '제한적 관람'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던 한 해.

그리고 2022년의 봄, 우리는 다시 한번 거대한 장벽과 마주했다.


새롭게 확산하기 시작한 오미크론 바이러스는 그 전파력으로 다시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방역지침은 이전보다 더욱 강화되었다.

급기야 행정안전부에서는 전국 지자체에 대규모로 모이는 행사(우리 벚꽃축제를 콕 집어 예시로 들며)를 개최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우리에게는 청전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2020년부터 지속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이미 모두가 극도로 지쳐 있었다.

길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봄이 다시 왔음을 상징하는 벚꽃축제마저 또 다시 전면 취소해야 한다는 사실은 상실감을 더욱 키울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취소하면 그 이후 개최되는 모든 축제들에게도 영향을 미칠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대규모 감염병 발생 3년차인 2022년은, 이전과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시민들 스스로 방역 시스템과 지침 준수에 익숙해져 있었고,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개인 위생과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고, 아프면 집에서 무조건 쉬는 분위기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까?"

2020년처럼 모든 걸 차단하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2021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제한적'이나마 축제를 개최해본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결국 나는 행정안전부의 권고대로 '축제'라는 타이틀을 단 대규모 행사는 개최하지 않되, '벚꽃길' 자체는 개방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축제의 이름은 내려놓되, 봄을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벚꽃을 보여줄 길은 열어주자는 일종의 타협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여의도 벚꽃길은 축제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반 도로다.

평소에는 차량과 보행자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고, 길이도 1.7km나 된다.

놀이공원처럼 입구와 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통제를 위한 구조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이 긴 길을 혼란 없이, 안전하게 개방할 수 있을까?

통제 없는 개방은 곧 팬데믹 상황에서 대규모 밀집을 유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밀집은 곧 감염 확산의 위험을 의미했다.


나는 여의도 벚꽃길만을 확대해둔 지도를 여러장 펼쳐두고, 어떻게 길을 개방하면 좋을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고민 끝에, ‘동선을 설계하자’는 생각을 했다.

바로 '일방향 통행'을 길을 구획하는 것이었다.

이 길은 차량 통제 시 폭이 꽤 넓어지는 보행로로 바뀌는 길이고, 벚꽃나무가 몰려있는 보행로에 주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점을 고려했다.

통제하는 도로 중앙에 펜스를 설치해 공간을 반으로 나눴고, 횡단보도나 국회 4~6문을 기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중앙의 펜스를 없앤 우회공간을 만들었다.

벚꽃을 보기 위해 통제된 벚꽃길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벚꽃나무가 집중된 오른쪽 길로만 통행하고, 벚꽃을 다 보고 나가려는 사람들은 왼쪽 길로 통행하여 길을 나설수 있도록 동선을 분리했다.

중앙 분리 펜스가 없는 우회공간에는 화장실, 쉼터, 현재 위치와 남은 거리를 알 수 있는 표지판 등을 배치하여,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혹은 벚꽃이 싫증나면) 돌아서 나갈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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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벚꽃길 개방 동선 배치도, 우측 통행을 유도하는 입장구역

그리고 중간중간 운영 요원과 안내판을 배치하여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우측 통행으로 벚꽃을 관람할 수 있게 유도했다.

길의 초입부터 일방통행의 규칙을 명확히 안내하고, 곳곳에 배치된 요원들이 지속적으로 동선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킥보드,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등의 이동 수단은 벚꽃길 통행을 금지하는 규칙도 이때 만들었다.

이러한 기구들이 동선의 흐름을 방해하고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요소였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쾌적한 벚꽃 관람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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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펜스가 쳐진 벚꽃길 전경,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안내판 제작 과정


처음에는 윗분들이 "사람들의 동선을 우측 통행으로 통제하는 게 쉽지 않을 거다"라며 우려를 표하셨다.

나 역시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넓은 길 위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게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한국 사회가 우측 통행이 보편화 되어있고, 규칙을 워낙 잘 지키는 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인파가 다 함께 우측 통행을 하니, 어떤 누군가가 그 규칙을 깨고 역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측 통행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벚꽃을 보러 온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옆 사람을 따라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마지막까지도 조심스럽게 걱정하시던 국장님께서는 현장에 직접 와서 보시고는, 자연스럽게 우측으로 흐르는 동선을 보고 만족해하셨다.

KakaoTalk_20250717_120950552_10.jpg 국회 5문 앞에 예쁘게 핀 나홀로 나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줄. 한국사람들은 줄을 참 잘선다.


그렇게 시민들은 '축제'는 없지만, 다시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마스크를 쓰고 맞이할 수 있었다.

시끄러운 공연이나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 푸드트럭 등이 없으니 벚꽃길이 오히려 쾌적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벚꽃길에서 뭘 파는 게 없으니 대부분 주변 지역 상권을 이용했고, 이로 인해 인근 상점들의 매출이 부쩍 늘었다고 들었다.

우리는 이 '동선의 미학'을 통해 길고 긴 감염병의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KakaoTalk_20250717_120950552_04.jpg 통제 해제 직전 방호벽에 붙인 2022년 현수막.


2022년 벚꽃길 개방을 통해,

축제의 본질은 단순히 화려한 이벤트나 상업적인 요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꽃이 피는 시기,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

팬데믹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안전에 집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벚꽃은 그렇게, 통제와 질서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피워내고 있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축제'는 없었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금 함께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급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 더 풀어보자면,

현장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데 모 국회의원실에서 갑자기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에 벚꽃길 개방 계획안 자료를 달라는 요구를 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자료를 축제 담당자가 직접 의원실에 가지고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나보고 갔다오라는 연락이 부서 서무에게 왔다.

이 지역구 의원도 아니고, 시 의원도 아닌 국회의원이 벚꽃축제 계획안을 달라는, 그것도 담당자가 직접 가지고 오라는 자료요구를 하는게 의아하기도 했고, 현장에서 땀나게 뛰어다니는 바쁜 담당자를 오라가라 하다니 싶어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씩씩대고 의원실을 찾아가니, 왠걸 내 상상보다 더 젠틀한 보좌관과 비서관이 나를 맞아주며 회의실로 이끌었다.

현장에서 바쁜 나를 굳이 부른 이유를 들어보니, 그 당시 막 취임한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청와대 개방'을 지금 이 의원실에서 초안을 잡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사전 예약부터 개방 시 동선 등까지 어떻게 짜는게 좋을지 의견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마침 그들의 코 앞에 벚꽃길을 일방향 동선으로 개방한 우리가 있었고, 대규모 인파 동선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싶어 담당자를 소환한 것이었다.

나는 2021년에 추점의 방식으로 관람 사전예약을 받아본 경험과 2022년의 일방향 동선을 만든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계획과 아이디어에 의견을 보탰다.

그 이후 청와대는 목표한 일정에 맞춰 개방이 되었다.

청와대에 가보진 않아서 내 의견이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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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MBC 8시 뉴스 인터뷰. 생각보다 언론사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한다. (우) 축제기간 중 나의 패션 디폴트 값. 무전기+파일+조끼


2022년의 벚꽃은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잊지 못할 아픔을 남겼다.

축제 준비 막바지인 3월 말, 나는 지독한 코로나19에 감염되고 말았다.

온몸을 으스러뜨리는 듯한 통증과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벚꽃축제 준비에 나의 자리가 비면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코로나에 걸린 사실을 숨기고 출근했다.

물론, '말이 숨기는 것'이지, 함께 근무했던 부서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나의 걸쭉한 기침 소리만 들어도 내가 바로 '그것'에 걸렸다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그때 팀장님은 나에게 "아픈데 쉬라고 하지 못하니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하지만 절대 나보고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하하.

(검사 키트를 구해서 혼자 검사해봤는데, 선명한 두 줄, 양성이었다.)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 나는 무조건 집에 격리되어야 했고, 그렇게 되면 축제 준비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 될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약국에 가서 인후통 약과 가글 등 약을 잔뜩 사서 약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코로나에 잘 듣는다는 처방약을 받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사무치게 서러웠다.

아픈 몸을 이끌고 벚꽃길 위에서 동선을 체크하고 직원들을 독려해야 했던 그 시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에게 깊은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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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러워서 코로나 자가검사 결과와 구매하는 모든 약들을 사진찍어 기록했었다. 정말 인생 역대급 모든 약을 다 먹은 것 같다.


그 이후로 코로나에 한 번 더 걸렸었는데, 그때는 신기하게도 증상이 매우 약했다.

어쩌면 2022년에 처방약 없이, 쉬지도 못하고 코로나를 온몸으로 견뎌내면서 강력한 항체가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나는 보건복지부 데이터에 공식적으로는 코로나에 1번 걸린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은 두 번 걸렸는데 말이다.

벚꽃은 그렇게 나의 건강까지도 희생시키며 피어났고, 그 해의 축제는 나에게 남모를 고통과 함께 잊지 못할 동선을 남겼다.


기획이란 결국,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더 안전하고 깊이 있게 누릴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해 나는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정말 몸으로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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