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꽃보다 먼저 온 봄.
2020년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멈춰 섰던 벚꽃축제.
2021년 '벚꽃 로또'라는 이슈와 함께 제한된 만남을 시도했고,
2022년에는 '축제' 대신 '벚꽃길 개방' 이라는 절충안을 찾아냈다.
그리고 2023년, 비로소 지난 3년간의 기다림을 끝내고, 완전한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나는 매년 벚꽃축제의 주제를 그 전 해 가을이 시작되며 고민한다.
2023년의 주제는 2022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숙고했던 것 같다.
점점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꺾이고 있었고, 이제는 슬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2023년 5월 세계보건기구는 마침내 코로나19 팬데믹의 공식 종료를 선언했다.)
여러 단어를 두고 고민하던 중, 최종적으로 결정한 2023년 벚꽃축제의 주제는 '다시 봄'이었다.
다시 돌아온 봄, 다시 열리는 축제, 그리고 다시 바라보게 된 일상.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모두에게 '다시'라는 단어는 조금 더 진심으로 와닿았고, '봄'이라는 말은 단순한 계절의 이름이 아니라 위로처럼 들렸다.
개인적으로도 [다시 봄]은 내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렀던 문장이었다.
2020년엔 닫았고, 2021년엔 반만 열었고, 2022년엔 열 수 없었던 축제를 드디어 완전히 '다시' 여는 해였으니까.
무려 4년만에 축제를 다시, 제대로 개최하는 해였다.
이번만큼은 기필코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모든 부서가 달려들어 만반의 준비를 했고, 기업 협찬까지 끌어내며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 삼박자를 다 잡은 한 판을 계획했다.
게다가, 이번 해에는 환경을 생각한 축제를 해보자고 다짐했던 해이기도 하다.
벚꽃시즌이 다가올 때면 하루에도 여러 통의 취재요청과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21년 한겨레 최우리 기자와의 인터뷰였다.
기후변화로 인해 벚꽃축제 일정을 잡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있고, 지자체 간 벚꽃 개화 시기 눈치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나도 2월부터 일본 벚꽃예보를 찾고, 전년도의 기온 통계를 내고, 벚꽃길에 계속 나가 하루하루 벚꽃잎을 세며 개화 예측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
'4월 초, 식목일 전후로 개화하고 일주일정도 지나서 떨어진다.' 라고 내가 전임 담당자에게 전달받은 벚꽃 개화 기록은 이제 더이상 참고할 수 없는 자료였다.
이상기온은 점점 심각해졌고, 벚꽃개화 맞추기가 점점 로또 당첨 급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2023년에는 기획 단계부터 '환경을 생각하는 축제'를 목표로 삼았다.
고맙게도 함께 축제를 만드는 문화재단도 뜻에 동의해주었다.
그래서 2023년 벚꽃축제부터 푸드존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될 푸드트럭들은 친환경 소재의 최소 포장 외에는 반드시 우리가 제공하는 다회용기만을 사용해야 했고, 텀블러나 용기를 지참하는 시민에게는 특별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축제때 쓰이고 버려지는 리플렛 출력물도 최소수량으로 하고 QR코드로 행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QR코드를 행사장 곳곳에 설치했다.
수십팀이 참여하는 아트마켓은 부스를 현수막 대신 각자가 직접 만든 입간판을 만들어오게 해서 버려지는 현수막 수량도 최소로 하고자 했다.
하루 수백명의 근무자가 상주하는 상황실도 매번 일회용 도시락을 먹던 것에서 밥차를 사용하기로 해서, 일회용 쓰레기를 줄여보고자 했다.
청소과는 우리의 결정을 대환영했고, 올해는 쓰레기 양이 급감할 것이라며 기대에 찬 반응을 보였다.
매년 5백만 명의 상춘객이 찾는 여의도 벚꽃축제에서 일회용품 없는 푸드존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나 또한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2023년 3월, 이상했다.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꽃샘추위는 커녕 봄바람이 아니라 초여름의 기운이 느껴졌다.
서울의 벚꽃은 보통 4월 초쯤 피는데, 그해엔 3월 26일에 개화했다.
그건 내가 2005년부터 모아온 벚꽃 개화 기록 중 가장 빠른 수치였다.
뉴스에서는 ‘역대급 이상고온’이란 단어가 연일 쏟아졌다.
우리는 축제를 4월 4일부터 9일까지로 이미 발표한 상태였다. 이미 모든 계약이 완료된 이후였고,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아무 준비도 안된 벚꽃길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급하게 교통 통제를 4월 1일부터로 앞당기고 질서유지를 위한 통제부터 먼저 시작했다.
축제 일정을 통째로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이미 시설물 설치, 임차 계약 등이 4월 4일부터 9일까지로 진행되어 있는 터라, 급하게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많은 업체와 새로 일정을 조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축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벚꽃은 활짝 피어버렸고, 우리는 기도했다. '부디, 제발, 낙화하지 말고 조금만 버텨줘.'
그런데 축제 시작날, 비가 왔다. 그 비는 우리의 기도 같은 걸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벚꽃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결국 축제의 시작과 함께 낙화가 시작되었고, 축제 중반에 접어들자 벚꽃은 거의 지고 없었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 마치 '홍철없는 홍철팀' 같은 말장난 같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민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벚꽃도 없는데 왜 길을 막았느냐", "교통통제는 당장 해제하라", "축제를 당장 끝내라." 위에서는 조기 철수를 하자는 요청이 이어졌고, 현장에서는 일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결국 끝까지 버텼다.
이유는 단 하나. 벚꽃은 없었지만, 예술인과의 약속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축제를 위해 준비한 모든 퍼포먼스는 여전히 유효했고,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도 변함없이 준비돼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씁쓸했다. 방문객 수는 마지막 날로 갈수록 급감했고, 현장 분위기는 빠르게 식어갔다.
축제 마지막 날, 끝까지 축제를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문화재단 팀장님이 내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벚꽃이 다 하는 축제구먼."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면서도, 속이 좀 쓰렸다.
아무리 우리가 무대와 콘텐츠를 열심히 준비해도, 결국 시민들이 기대하는 건 그 짧은 일주일짜리 기적, 벚꽃이었다는 걸 다시금 체감한 순간이었다.
자연 앞에서의 무력감, 그러나 그럼에도 멈추지 않아야 하는 기획자의 책임. 이 두 감정이 교차하는 봄이었다.
이렇게 4년 만에 전면 개최된 우리의 축제는 이상고온을 만나 우당탕탕 끝나버렸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의 계획은 한없이 미약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해였다.
'다시 봄'이라는 희망찬 주제를 내걸었지만, 정작 봄의 상징인 벚꽃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빠르게 피고 졌다. 2023년의 벚꽃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쳤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지혜를 배우게 했다.
그리고 꽃이 없어도 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를 남겨주었다.
또한, 지속 가능한 축제에 대한 우리의 작은 시도가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지, 그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해이기도 했다.
예측은 가능하지만 통제는 불가능한 것들 속에서 그렇게 나의 벚꽃시즌이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