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육볶음 그리고 벚꽃 연장전.
벚꽃축제 5년차, 2024년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힘들었던 한 해였다.
탈출구가 없는 미로에서 탈출구를 직접 만들어서 나가야 하는 것 마냥, 모든것이 막막하고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고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던, 그냥 도망치고 싶었던 시기가 바로 2024년 벚꽃축제를 준비하던 때였다.
논쟁과 타협, 그리고 끝없는 '연장전'이 반복되었던 나의 네 번째 벚꽃 이야기를 풀어본다.
벚꽃축제는 영등포구에서 개최하지만, 사실 축제가 열리는 장소의 관리 주체는 제각각이다.
미래한강본부가 관리하는 '여의도 한강공원',
국회사무처가 관리하는 '국회관리용축구장',
그리고 영등포구청이 관리하는 '벚꽃길', 이렇게 세 곳에서 축제가 동시에 진행된다.
심지어 벚꽃길은 더 기가 찬다.
길에 있는 가로등과 벚나무, 보도블럭 등은 영등포구청의 소관이지만, 자전거도로 펜스는 강서도로사업소, 신호등은 영등포경찰서, 노상주차공간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소관이다.
그리고 여기에 빠져서는 안되는 영등포소방서, 여의나루역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국회의사당역을 관리하는 서울메트로9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축제의 일정 등 대략 윤곽이 나오면 가장 먼저 국회사무처, 미래한강본부.... 순으로 최소 8~9개의 기관에 동시다발적으로 축제 일정을 알려야 한다.
축제를 위한 교통 통제 일정을 정하고, 세부적인 축제 배치를 조정할 때는 반드시 미래한강본부와 국회사무처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구청에서 협력하는 부서만 해도 내가 근무하는 부서를 제외하고 14개 부서가 달려든다.
나는 기본 9개 이상의 기관과 14개 부서와 축제를 무사히 개최하기 위한 밀당을 적어도 몇 달간 하게된다.
매년 각 기관과 부서마다 담당자나 결재권자가 조금씩 바뀌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슈들이 달라서, 이들과의 사전 협의는 축제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필수 관문이면서도 때로는 매우 피곤하고 지난한 과정이 되곤 했다.
(사실 기획자 업무라는건 '협의'의 연속인것 같다. 협의로 시작해 협의로 끝나는, 무간지옥 이랄까)
이러다보니, 축제가 진행되며 임시로 개설하는 비공개 관계자 오픈카톡방에는 거의 200명에 가까운 관계자들이 들어오기도 한다.(임시 단기직, 아르바이트, 용역을 제외하고)
여튼, 이 '협의'의 무간지옥은 사실, 모든 협의가 순탄하게 흘러가도 쉽게 버티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9개의 기관과 14개의 부서 관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하하)
그런데 2024년에는 문제가 있었다. 정말로.
문제의 시작은 국회사무처였다.
매년 국회관리용축구장에서 운영하던 푸드마켓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장은 체육시설이며, 체육시설에서의 모든 상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전례와 관행은 소용없었다. 내부 규정과 원칙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대체지를 찾아야 했다.
급히 우리 행사장과 붙어있는 한강공원 쪽으로 눈을 돌렸고, 이번에는 서울시 미래한강본부와 조율에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미래한강본부 측에서는 가스 화기를 사용한 취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고로, 푸드트럭이 있는 푸드마켓을 한강본부 관할 구역에 배치하는건 안된다고 거절했다.
전기 조리기구를 사용한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전 협의를 거쳐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단 가스 조리기구를 제외하고, 전기 조리기구만을 이용해 소규모로 푸드마켓을 운영하는 안을 들고 미래한강본부를 찾아갔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이, 이미 축제에 참여할 푸드트럭을 전부 모집해 놓고 난 뒤에 발생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선정된 푸드트럭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했지만, 양해를 구하고 선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벚꽃축제 시즌을 노리고 일부러 스케줄을 비워두었을 푸드트럭 운영자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들의 기회비용과 기대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지만, 나는 지금 죄송한 마음보다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급했다.
우리는 이제 전기 조리기구 사용만이 가능한 푸드마켓 입점 업체를 급하게 찾아야 했다.
일단 가스화기 사용을 위해 개조된 푸드트럭들이 후보군에서 모두 제외되니 너무 막막했다.
결국 영등포구 소상공인협회의 손을 잡고 급하게 지역 소상인들 중에 참여가 가능한 분들을 찾았다.
전기 조리기구 사용, 소규모 운영, 철저한 쓰레기 관리, 그리고 지역 상인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설득해서 겨우겨우 간신히! 정말 간신히!! 미래한강본부의 장소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장소 사용 허가 공문에는 정말 수많은 금지사항과 '어쩔수 없이 이번만 승인한다'라는 전제조건이 길게 붙어 있었다.
(내 인생 그렇게 텍스트가 많이 적혀있는 긴 공문은 처음 봤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서류 작업과 설득의 시간을 보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무사히 축제를 개최할 수 있게 된 데 안심했지만, 웬걸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결정적인 사건은 한 방문객이 구매한 제육볶음의 질이 매우 낮다고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벚꽃축제 바가지 물가'라며 게시 글을 올리면서 터졌다.
언론은 그 사진과 게시글을 토대로 기사를 쏟아냈다. 순식간에 '여의도 벚꽃축제 제육볶음 바가지 논란'이 주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갑자기 내 스마트폰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내부 감사팀부터 서울시, 행정안전부까지 줄줄이 연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현장에 있는 담당자에게서 수합한 내용과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동향보고 문서를 작성해서 단톡방에 올렸다. 그 문서는 캡쳐된 이미지로 영등포 벚꽃길에서 서울시청, 세종시에 있는 행정안전부 관계자에게까지 멀리멀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점주께서 방문객의 항의를 받고 양을 더 드렸다고는 했으나 이미 기분이 상해 게시글까지 올린 방문객이 만족했을리는 없다.
점주께서는 본인 때문에 큰 사달이 났다며 매우 미안해하셨지만, 이미 일어난 일.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였다.
이 문제의 원인은 새로 입점한 푸드마켓 업체들이 대규모 축제의 음식 부스를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지역 상인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음식의 품질이나 양의 관리가 균일하지 못했고, 우리도 이를 현장에서 계속 꼼꼼하게 모니터링 하지 못한 탓이었다.
우선, 민원응대가 능숙하지 않았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 인원을 보강해 상주시켰고, 점주에겐 가격대비 제공해야 하는 음식의 양에 대한 기준을 드렸고, 그 이후 그분도 더욱 꼼꼼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이후에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제육볶음'은 축제 내내 징글징글한 키워드가 되어 따라다녔다.
이렇게 제육볶음 사건만 터졌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2024년의 진짜 악몽은 따로 있었다.
작년에 미친 듯한 무더위로 인해 3월 26일에 벚꽃이 활짝 피어났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3월 말에는 무조건 개화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축제 일정을 빠르게 잡았다.
그런데 웬걸? 꽃이 예상보다 늦게 피는 것이 아닌가. 허허.
게다가 심지어, 꽃이 피고 나서 날씨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서, 벚꽃이 거의 2주 가까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보통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꽃잎이 떨어지는데 말이다.
결국 축제는 예정된 일정으로 개최해서 일찍 끝내되, 교통 통제를 연장하고 거리 공연을 급하게 추가 편성해서 아직 떨어지지 않은 벚꽃을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상황을 더 유지하기로 했다.
내부에서는 '도대체 언제까지 막을 거냐'며 피로감을 토로했지만, 벚꽃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인파는 계속 미어터졌다.
통제 연장에 연장을 거듭한 축제는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 공식 축제를 하고, 교통 통제는 연장해서 4월 8일까지 하는… 슬픈 결말로 끝났다.
나는 결국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따지면 약 보름을 벚꽃길 위에서 씨름했던 것이다.
장소 사용을 두고 기관들과의 논쟁과 타협, 먹거리 민원, 그리고 꽃과의 눈치게임에서 밀려 연장을 거듭한 축제. 2024년 벚꽃축제는 나의 기획자 시절 중 역대급으로 힘든 축제였다.
육체적인 피로감은 물론, 끊이지 않는 문제들에 정신적으로도 너무 지쳐 있었다. 온 몸이 계절을 이고 다닌다는게 이런 거였을까 싶다.
이해관계, 행정, 자연, 시민. 그 모든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서있어야 하는 나의 봄은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