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죠...?
나는 공연장이 있는 기관의 인턴으로 시작했다.
무대 뒤에서 생수를 나르고, 프로그램북 오타 위에 수정 스티커를 붙이던 그 시절이 내 출발점이었다.
이후 수도권의 문화재단에서 일했고, 서울시의 위탁사업도 운영해봤다. 나중에는 공무원으로도 일했다.
즉, 문화기획자라면 한 번쯤 거쳐야 한다는 공공조직의 모든 단계를 다 밟아본 셈이다.
작은 인턴 자리부터 시작해 재단의 실무자, 위탁사업 운영자, 그리고 행정조직의 공무원까지.
이 길을 두루 경험해 본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감히 말할 수 있다.
"네가 지금 겪고 있는 그 현실, 나도 다 겪어봤다."
그래서 이번 글은 '문화기획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글이 아니다.
이미 기관 안으로 들어와 매일 보고서를 쓰고, 결재선을 돌리고, 민원에 시달리는 동료들을 위한 글이다.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그리고 이 일의 의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함께 짚어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기획자라 하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창의력이 뛰어나면 좋다. 하지만 내가 여러 공공조직을 겪어본 바로는, 사실 그게 1순위 역량은 아니다.
공공조직에는 이미 시스템이 있고, 체계와 위계가 존재한다.
창의력이 너무 넘치면 오히려 윗선에서 불편해할 때가 많다.
그보다는 눈치가 빠른 사람, 타협할 줄 아는 사람, 적절히 순응할 줄 아는 사람, 때로는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 보일 줄 아는 사람이 조직 안에서는 더 오래 살아남는다.
실제 성과 평가도 그렇다.
개인의 창의적 기획력보다는, 상위 기관이나 대표가 이미 정해놓은 큰 틀과 방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느냐가 관건이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뭐냐"가 아니라, "윗선에서 정해준 걸 얼마나 매끄럽게 실행했냐"가 곧 업무 성과다.
또 하나, 공공조직에서의 일은 대부분 직접 기획하지 않는다.
용역업체, 전문가 그룹(PM, 감독 등), 혹은 시민 그룹과의 협업을 전제로 한다. 담당자는 직접 아이디어를 펼친다기보다,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획력보다 의사소통 능력과 협상력이다.
서로 다른 요구를 어떻게 매끄럽게 맞추고, 조직의 요구에 어떻게 끌어다 붙이는지.
사실상 ‘조율자’이자 ‘통역자’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만 보면 참 재미없다.
나는 문화를 매개로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싶어서 이 길에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그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건 행정절차와 보고서다.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니라, 늘 동일하게 반복되는 양의 절대값이 존재한다.
보고서를 치우다 보면 하루가 다 가고, 시간에 쫓겨 내가 담당자로 기재된 이 사업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조차 사라진다.
"나는 이 사업을 왜 하고 있지? 여기서 뭘 만들어내고 싶지?" 같은 질문은 늘 밀려난다.
결국 남는 건,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싶었던 열정과, 보고서에 파묻혀 허무하게 퇴근하는 자기 모순.
이 웃픈 간극이 바로, 기관 속 문화기획자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생각보다 각 사업의 사이클은 빠르게 돌아온다.
결과물은 보통 축제, 행사, 프로그램인데, 길어야 하루 이틀, 많아야 사흘이다.
반면 그 하루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 년 이상이 걸린다.
기관 사업의 특성은 대부분 문화정책이나 문화복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 거친 과정 자체가 성과로 간주된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 과정과 성과를 모으고, 그것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 아카이브 용역, 평가 용역까지 발주한다.
문화사업이라는 게 "판매량"이나 "수익" 같은 정량적 지표로 쉽게 증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성과보고서의 두께가 기획자의 성과로 환산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업무분장표에 내 이름 옆으로 3개 이상의 사업이 적혀 있다?
그건 곧 올해는 내내 정신없이 바쁘다는 뜻이다. 프로그램이 겹치기 시작하면, 행정 보고서와 회계 정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현장은 매주 연달아 굴러온다.
특히 축제나 행사처럼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사업을 맡는다면?
주말 근무는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다.
현장에서 동선을 잡고, 돌발 상황을 수습하다 보면 주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주말은 잘 쉬었냐"는 인사에 헛웃음만 나온다.
현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화예술 기관의 실무자로 일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유사한 사업을 직접 벤치마킹하거나 참가하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나는 벚꽃축제를 담당할 때, 진심으로 일본의 벚꽃축제를 가 보고 싶었다.
일본에는 벚꽃 개화 예보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 있을 만큼, 벚꽃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여는 축제에서 뭔가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어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다. 일본에 벚꽃이 필 때, 한국 여의도에도 벚꽃은 핀다.
내가 담당자인 이상, 그 시기에는 꼼짝없이 현장에 묶여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저 갈증을 끝없는 구글링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기사, 해외 축제 사례, 짧은 영상 클립을 보며 상상으로만 현장을 경험했다.
그때 나는 옆 자리에서 '문화누리카드' 사업을 담당하던 동료에게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여기서 제일 문화소외계층은 바로 나야. 나도 카드 한 장 줘."
웃으며 한 말이지만, 그 농담 속엔 진심이 있었다.
문화기획자이지만 문화생활을 누리기 어려운 현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씁쓸한 농담이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예술기관 종사자들이여.
우리는 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쥐구멍에 볕들 날은 정말 없단 말인가?
조직 안에 있다 보면, 내가 극혐하는 차장이나 팀장, 본부장, 대표의 모습을 매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아찔한 생각이 든다. "나도 여기서 5년, 10년, 15년 있다 보면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바로 이직을 하는 것이 답일까?
새로운 조직이 지금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다. 어디든 '또라이 총량의 법칙'은 존재한다.
나는 사실 이직을 자주 택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내 성향에 꽤 잘 맞았다.
나는 정체됨을 느낄 때마다 새로운 변화를 쫓아갔다.
새로운 조직, 새로운 프로젝트에 몸을 던지면서 “나는 아직 정체되지 않았다”는 자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게 내겐 큰 자극이 되었고, 또 다시 일을 붙잡게 하는 힘이 되었다.
대신 나는 이직을 결심할 때 최소한 하나의 기준을 정해두었다.
바로 '프로젝트', 즉 '일'을 보고 움직이는 것.
기관의 이름이나 규모보다,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 보다, 그곳에서 내가 맡게 될 일이 무엇인지가 중요했다.
공연장 인턴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늘 공간을 거점으로 한 문화기획을 했고, 영어를 조금 한다는 이유로 외국인 교류 프로그램도 맡곤 했다.
그래서 내 이직 커리어는 이렇게 이어졌다.
평택 미군기지 마을 → 폐교를 리모델링한 경기상상캠퍼스 → 북촌한옥마을 → 여의도 벚꽃축제
일의 성격은 일관되게 이어갔지만, 규모와 맥락은 점점 확장됐다. 덕분에 정체됨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해법은 아니다.
이직을 하면 확실히 새로운 자극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옮긴 조직 역시 내가 있던 곳과 다르지 않게 고질적인 문제와 이슈들을 품고 있었다.
인간관계, 행정 시스템, 조직의 비효율성… 간판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직을 준비한다는 건 생각보다 꽤 많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당장 이직이 가능한 사람은 많지 않다. 현실은 냉혹하다.
그렇다고 그냥 정체된 채 "때 되면 승진하겠지"라는 태도로 살고 싶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당장 이직을 선택하기 어려운 '대리' 이상급의 사람들에게 시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방식이 있다.
바로, 내가 맡은 사업의 작은 틈새에 나의 관심과 욕망을 슬쩍 심어보는 것이다.
공공기관 사업은 이미 큰 그림이 정해져 있다. 담당자가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하지만, 틈은 있다.
참가자 모집 홍보물을 만들 때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올릴 때
기념품을 디자인하거나, 이름표와 단체 티셔츠를 준비할 때
문화사업의 특성상 사람과 사람이 모여 무형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는, 담당자의 손길이 닿는 세세한 순간들이 늘 숨어 있다. 그 순간에 내 아이디어를 반영할 작은 장치를 심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상사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색깔 하나, 폰트 하나까지 간섭하는 컨트롤형 상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사도 내 사업만 들여다보는 건 아니다. 수많은 사업이 동시에 굴러가기 때문에, 현장을 직접 챙기는 건 결국 담당자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외로 작은 틈이 생긴다.
그리고 그 틈에 집어넣은 아이디어가 큰 성과로 이어지진 않아도, 동료들이나 상사에게서 "오, 그거 괜찮던데?"라는 피드백 정도만 얻을 수 있다면, 다음번엔 그 틈이 조금 더 커진다.
그래서 나는 동료 담당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당신이 맡은 사업에 당신만의 아이디어를 심어라.
그것이 엄청 기발하거나 거대한 혁신일 필요는 없다.
기관에서 모든 걸 주도적으로 할 수 없을지라도, 작은 틈새에 개인적인 욕망과 생각을 심어 넣는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된다.
그것이 당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관심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아이디어가 무리 없이 조직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이제는 사업계획 단계부터 슬쩍 끼워 넣어볼 차례다.
물론, 윗분들이 좋아하시는 적절한 행정용어로 포장하는 스킬은 필수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조직의 니즈와 어울려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일할 때, 친한 선배 덕분에 주한영국문화원과 청년 사회혁신가 양성과정을 운영해볼 수 있었다. 당시 조직 내부에서도 국제 교류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점이었고, 마침 영국문화원도 그 과정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론칭하고 싶어 했다.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내가 떠난 뒤로 이 프로그램은 없던 일이 된 것 같지만(슬프게도), 난 이 협업 덕분에 주한영국문화원의 지원으로 영국 런던 출장도 다녀올 수 있었다. 거기서 만난 전세계의 양성과정 운영자와 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여의도 벚꽃축제에서도 그랬다. 우연히 읽은 기자 인터뷰에서 영감을 얻어 시각장애인 축제 해설 프로그램을 관광 담당자와 함께 론칭했다. 마침 서울시가 ‘약자동행’을 시정의 주요 과제로 내세우던 때라, 이 프로그램은 정책과도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다.
내 보스 of 보스였던 구청장님은 이 프로그램을 매우 흡족해 했고, 그것은 내 업무 성과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내가 퇴사하고 나서 나중엔 다른 기관에서 주는 상까지 받았다고 들었다.
이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각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틈은 반드시 생긴다. 그리고 점점 더 넓어진다.
그 틈을 이용해 시도한 것들은, 시간이 흘러보면 기획자로서의 나를 설명해주는 결정적 포인트가 된다.
(실제로 나는 이 경험들을 이직할 때마다 자기소개서의 핵심 소재로 써먹었다.)
똥멍청이들로만 가득 차 있고, 시키는 일도 쓰잘데기 없어 보이던 조직 안에서도 내가 만든 작은 변화는 분명히 남는다.
그리고 그건 내 상사도, 내 동료도, 내 후배도 절대 가져갈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의 자산이 된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거지 같은 조직도 조금은 다닐 만해진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쌓인다면, 좀 더 좋은 기회가 왔을때 이직이 한결 수월해진다!
조직 내의 인간관계 보다는 내가 맡은 일에 애정을 좀 더 줘보자.
인간관계는 늘 내맘 같지 않지만, 일은 내가 쏟은 애정과 노력만큼의 성과를 언젠간 돌려받을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일한다는 건, 늘 시스템과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일이다.
보고서와 정산에 파묻히고, 때론 조직의 부조리에 치이며, 내가 꿈꾸던 '문화기획'과 거리가 멀어 보여도, 그 안에서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어디선가 형광등 불빛 아래 문서 더미에 앉아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이 심어둔 작은 아이디어, 기획자의 고집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순간, 현장에서 누군가의 웃음으로 피어난 장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젠가 당신의 자산이 되고, 다음 길을 열어주는 힘이 된다.
그러니 지치고 회의감이 몰려와도 기억하자.
"결국 우리는, 거지 같은 현실조차도 기획해내는 기획자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동료 기획자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잘 버티고 있어. 그리고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