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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예지 Jul 03. 2023

나만 보는 장면

운명 같은 사랑을 발견한 때를 수식하는 익숙한 표현들이 있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림, 상대방 뒤에 후광이 비침, 세상이 멈춘 것 같음, 나와 그 사람만 이곳에 존재하는 듯함… 과 같은 표현들 말이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건 꼭 그런 것들과 비슷하다. 똑똑히 말하면 그 장면들이 풍기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상대가 사람인 것과 순간인 것의 차이일 뿐. 


천천히 재생되던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은 아주 찰나인데, 꼭 필터가 쓰인 것 같은 색감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난생처음 봤다거나 두 번은 보기 힘든 풍경을 마주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허나 일상적이고 사소한 때에 더 자주 만날 수 있던 순간이다. 이를테면 경비 아저씨가 분리수거함을 정리하고 계신다거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골목 한쪽에 모여 하하 호호 웃고 있을 때와 같이. 그야말로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재생되었기에 장면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오히려 더 잘 어울릴 것만 같은 모습이다. 


잦지는 않아도 마주할 때면 무척 반갑고 붙잡아 마구 묻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지, 언제 찾아오는 순간인 건지, 왜 이렇게 찰나인지. 아름다운 것들은 왜 이리도 미련이 없고 바람 같이 지나가는 걸 까. 보이는 모습들은 계속 이어져도 그 느낌은 잠시였다. 그런데 무형의 어떤 것에게 질문을 할 순 없으니, 아니 질문은 한다 해도 답은 얻을 수 없으니 나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깨어 있는 내가 겪은 상황인데도 잠잘 때 꾼 꿈처럼 금방 휘발되어 재빠르게 기록해야 했다. 그래서 어쩌지도 못한 채 흘려보낸 게 어느덧 셀 수도 없었다. 


꽤 오랜 시간 그 장면은 나와 함께했다. 경험한 직후엔 머리와 마음이 산뜻하게 정화되었다. 온갖 좋은 느낌들만으로 구성된 얇은 막이 내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이만큼이나 작은 나쁜 것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주는 느낌이었다. 잠깐의 기쁨을 누리기 바빴다. 그래서 이미 그것과 함께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장면에 의미를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이 장면들 같은 글을 써야겠다고. 보고 겪기 바빴던 시간을 드디어 뒤로한 채로. 따뜻하고 소박하고 일상적인 어떤 것들을 담고 싶다는 의미였다.


무언가의 존재는 그 존재가 부재할 때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던가. 현재는 그 장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쓰고 있을지도 모르고, 다시 찾아낼 방법 같은 것도 당연히 모른다. 문득 든 생각 중 하나는 그것이 순수의 증거가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나는 산타의 존재를 누구보다 오래 믿었고, 길을 걷다 발견한 요상한 분위기의 골목에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방방 뛰는 사람이었다. 순수함을 열심히도 지켜냈던 내게 신이라던가 영혼이라던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어떤 것이 내린 선물 같은 시간이었으려나. 최근의 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하나씩 격파해 나가기 바쁜 상태이므로 믿어 봄 직한 가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그렇다면 이건 내가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까. 


어린 시절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이 꿈같은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끌리기 마련이니까. 지금 여기의 나는 너무 작고 힘이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원더랜드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린이였다. 어떤 밤에는 어른이 되기 싫어서 베개를 뜨거운 눈물로 잔뜩 적신 적도 있다. 조금 더 커서도 그랬다. 스무 살이 되기를 바랐던 적은 아빠가 돌아가셨던 직후 빼고는 없었다. 그 나이가 되면 어른이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내 눈앞에 펼쳐진 끝이 보이지도 않는 길을 바라보는 기분일 것 같았다. 그래서 다 자란 나의 모습을 상상할 때의 한계치는 오랫동안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믿을 수 없는 일들은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반대편의 삶은 재미없어 보였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성큼성큼 다가와 반대편이라고 생각했던 쪽으로 자꾸만 나를 밀어낸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이고 싶고 이쪽의 삶은 역시나 그저 그렇다며 어리광 피우고 싶다. 책임지지 않고 싶고 돈이나 나이 같은 재미없는 것들이 뭔가를 망설이게 한다고 말하기 싫다. 얼레 벌레 들어선 길에서 허둥지둥 걸어가고 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게 찾아온 영화 같은 순간들을 기억하며, 이제는 나 스스로 그런 장면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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